숙희는 상현과 연호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에 들어섰다. 그녀는 거의 실신상태나 다름없었다. 연호도 병실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가빠왔고 다리가 풀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상현은 숙희의 손을 꼭 잡은 채 그녀에게 보폭을 맞춰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 기나긴 병원의 복도를 지나 경찰이 일러준 병실 앞에 이르렀다. 그 앞에는 경찰과 의사들이 뭔가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경찰로 보이는 사람이 상현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연민 양 보호자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경찰과 의사들은 상현을 데리고 복도 끝 쪽에 있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상현은 숙희와 연호에게 먼저 들어가 보라고 말하며 그들을 뒤따랐다. 숙희는 병실 앞에 서서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연호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괜찮을 거라고 그녀를 위로하면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병실 안으로 들어선 숙희는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침대 앞으로 다가가 연민을 보았다. 그녀는 딸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연민은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온화한 모습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연호는 연신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숙희와 연민을 번갈아 쳐다보며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행여 깨어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자고 있는 건가요?”
뒤따라 들어왔던 간호사가 말했다.
“네.”
숙희와 연호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호자분들은 이제 나가주세요. 환자분이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숙희는 눈물을 훔치며 연호와 함께 병실을 나왔다. 환자와의 접촉을 금한다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딸의 손 한번 잡지 못하고 나온 숙희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했다.
얼마 후, 상현이 진료실을 나왔다.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연민이 있는 병실 쪽으로 힘없이 걸어왔다.
“연민이는 보고 나왔어? 좀 어때?”
“괜찮대요. 자고 있어서 얼굴만 보고 나왔어요.”
상현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천만다행이다. 근데 지금 들어가 봐도 되나?”
“안정을 취해야 돼서 지금은 안 된대요.”
세 사람은 병실 앞 의자에 앉아 연민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동생이 무사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연호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나니 지금껏 경황이 없어 생각지 못했던 궁금증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아버지. 근데 저 사람들이 뭐래요? 도대체 어디서 동생을 찾았대요?”
상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들의 질문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글쎄다. 뭔 일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의 한숨 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연정이 아버지, 모르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속 시원히 말 좀 해보세요.”
“.....”
“우리 연민이가 다친데 없이 건강한 상태인 거는 맞죠? 그렇죠?”
“응. 특별한 이상은 없대.”
“아버지. 지금까지 저 사람들한테 무슨 얘기를 듣고 오신 거예요? 아, 미치겠네!”
숙희와 연호는 답답해하며 상현만 쳐다보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뜸을 들이던 상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글쎄다. 경찰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잘 설명을 못해. 거 참, 뭘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암튼 막내는 의정부에서 발견되었다는구나.”
“네? 의정부요?”
“그래. 의정부란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연정이 아버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걔가 거기를 어떻게 가요. 집하고 학교 외에는 어디 갈 줄도 모르는 아이잖아요.”
“그럼 연민이가 납치라도 됐다는 소리예요, 아버지?”
연민은 사패산을 뒤로 끼고 자리한 의정부시의 시청사에서 발견되었다. 그녀를 처음 발견한 시청의 청원경찰이 경찰서에서 진술한 내용은 그 누가 보더라도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경찰은 그의 음주여부를 측정했을 정도로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이었지만, 음주는 하지 않은 것으로 측정결과가 나왔다. 무엇보다 그 청원경찰의 주장이 너무나도 확고했고, 또 일관성이 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그의 진술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날 밤, 저는 본관 로비에 앉아서 평소처럼 일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하는 일이라 특별할 게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하늘에 뭔가 떠있기라도 한 것처럼 웅웅 거리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서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비행기나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는 소리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지를 쓰다 말고 밖에 나가서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랜턴을 들고 막 나가려는데, 갑자기 밖이 대낮처럼 환해졌다가 금방 다시 어두워졌습니다. 맑은 날씨에 무슨 벼락이 친 것도 아니고, 너무 황당해서 좀 머뭇거리다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낮부터 그랬던 것처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주변도 밤이면 그 일대가 늘 그렇듯 고요했습니다. 귀를 울리던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절대 음주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한지 20년이 넘었습니다. 방호직공무원으로서 나름 원칙도 있고 자부심도 있습니다. 이 일이 저의 생계인데, 어찌 규칙을 어기며 근무를 설 수가 있겠습니까? 암튼 저는 서둘러 별관으로 갔습니다. 그날 저하고 같이 근무를 섰던 직원이 그곳에 있었는데, 저랑 같은 걸 듣고 봤는지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직원도 별관에서 본관으로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 저랑 같은 소리를 듣고,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을 봤다고 하더군요. 뭔가 이상하다 싶어 그 직원에게 별관을 순찰하라고 시키고, 저는 본관을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순찰했습니다. 층별로 다니며 여기저기 다 점검했지만,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 직원도 별관 쪽은 이상이 없다며 저한테 전화로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옥상은 가봤냐고 물었습니다. 평소에 옥상은 잘 가지 않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그렇잖아도 가봤다며 별 이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저도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랜턴을 비추며 옥상 여기저기를 살폈습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막 돌아서려고 하는데, 옥상 한쪽에 설치해 놓은 소화수조 밑에 뭔가 검은 물체가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소에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는 자리라서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뭔지 확인하려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 일을 한 이후로 그렇게 놀란 적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처음엔 노숙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가까이 갔는데, 가서 보니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락없이 죽은 줄만 알았습니다. 근데 코 밑에 손을 대보니 숨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지체하지 않고 경찰과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별관에 있는 직원을 불러......, 이하 생략.』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은 교복에 있는 이름을 토대로 신원을 조회한 결과, 이미 신고가 접수된 실종자임을 알아냈다. 함께 달려온 119대원들도 그녀를 응급처치하기 위해 서둘렀지만, 의식이 없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처치할 것이 없었다. 경찰에서는 연민을 일단 병원으로 이송한 후에 상현의 집으로 연락을 했고, 의료진들 또한 안정제를 투여한 것 말고는 특별히 한 것이 없었다. 누군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녀를 납치했다가 계획에 차질이 생겨 버리고 갔다거나, 아무튼 변심을 하여 버리고 갔을 거라는 추측도 해볼 수 있었지만, 발견된 장소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의학적으로도 연민의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성폭행을 당한 흔적은 물론 어디 하나 찢기거나 긁힌 곳도 없었다. 오히려 구급차에 의해 이송되는 과정에서 팔에 타박상이 생겼을 뿐일 정도로 털끝하나 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이었지만, 무엇하나 상식적이지 않고, 전례도 없는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경찰로서는 무척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경찰에서는 이 사건이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특히 기자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정보를 철저히 차단했다. 덕분에 세상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건으로 묻혀가고 있었다. 반면 경찰 내부적으로는 과학수사니 뭐니 해서 나름 수사력을 동원해 그 어떤 증거나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심지어 연민이 등교하는 길과 의정부 시청 주변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들도 일시적으로 고장이 나거나 영상이 삭제되어 있었다. 사건이 벌어졌을만한 시간대에 누군가 일부러 카메라들을 조작했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해결은 못하고, 아니 해결할 의지도 없이 흐지부지하다가 가출로 결론을 내리고 수사는 종결되었다. 연민은 병원에 입원한지 이틀 후에 깨어났고, 실종된 3일 동안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병실에 누워 있은 지 3일째 되는 날, 눈을 뜨자마자 학교에 가야한다며 횡설수설했고, 본인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3일 동안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억에서 지우기로 했다.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고,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가 없다면 차라리 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민에게도 억지로 기억을 되살리게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묵묵히 도움을 주었다.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노력해야만 했다. 아무런 기억이 없는 피해자이면서도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연민은 더욱 더 소극적으로 변해갔으며,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기질에 더해져 나날이 심해져만 가는 대인기피증 때문에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녀는 자신과의 끝나지 않는 싸움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연정은 그 일에 대해 가족들과는 조금 다른 죄책감에 몹시 괴로워했다. 그 3일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부채의식은 그녀에게 있어서 지울 수도, 묻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연정이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을 때, 가족들은 망설였지만 결국 그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연정은 어떻게든 다시 수사를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고집을 피우기도 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과 현실을 개탄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은 모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만 했고, 언제든 터질 수 있는 그 상처를 주시하며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모든 것들은 철저하게 봉인되어져 있어야만 했다. 그것이 연민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