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도착한 연호는 학생들이 올 때까지 잠시 짬을 내어 구입한 책들을 훑어보았다. 특히 그 오지인의 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보고 또 봐도 소름이 돋고 잔상이 남았다. 수업을 하려면 마음을 돌려야만 했다. 그나마 시험이 끝난 학생들이 많아서 조금의 여유는 있었다. 수업시간이 다 되어 학생들이 하나둘 강의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하려니, 시험이 이미 끝난 학생들은 공부할 마음이 전혀 없어보였다. 먹을 것을 사달라거나, 혹은 수업하지 말고 놀자며 아우성인 아이들을 보면서 연호는 어렸을 때를 떠올리며 웃었다.
‘철없는 것들. 나도 저랬나?’
연호는 일단 시험이 남아있는 학생들을 다른 강의실로 옮긴 후, 왔다 갔다 하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놀아줄 수만은 없었다. 이 땅에서 고등학생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는 연호는 나름 아이들과 소통이 잘되는 선생으로 소문나 있었다. 하지만 소통은 소통이었고, 원장이나 학부모들이 싫어하는 것들을 하면서까지 학생들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문제를 뽑아 시험이 끝난 아이들에게 풀라고 나눠주면서 자습을 시켰다. 물론 문제를 푸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시험이 코앞인 학생들은 열심히 문제를 풀었지만, 시험을 막 끝낸 아이들의 머릿속에 지긋지긋한 수학문제가 들어올 리 없었다. 몸을 비비 꼬면서 온 몸으로 싫은 티를 내던 아이들 중, 평소에도 까불대는 학생 하나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선생님!”
“왜? 공부하기 싫다고?”
“네, 그건 당연한 거구요, 궁금한 게 있는데, 선생님은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문제나 풀어, 풀기 싫으면 자던가!”
공부가 하기 싫어 비비꼬던 학생들이 모두 이때다 싶어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궁금해요, 선생님! 얘기해 주세요.”
“아니면, 첫사랑 얘기해 주세요.”
연호는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때 처음 질문을 했던 그 학생이 다시 물었다.
“선생님?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선생님은 뭘 하고 싶으세요? 그때도 수학 선생님 하실 거예요?”
‘어쭈? 이 녀석 봐라?’
연호는 어이가 없었다. 별의 별 아이들과 부모들을 다 겪어봤지만, 이런 녀석들은 적응이 쉽지가 않았다. 연호는 알고 있었다. 이럴 때면 반론의 여지가 없는 기발하거나 황당한 답변을 해야 이 녀석들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선생님이 다시 태어나면? 음.....”
연호는 뜸을 들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연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말이야, 선생님은 음, 고래로 태어나고 싶어.”
아이들은 황당해하며 물었다.
“네? 뭐라고요?”
“그게 뭐야.”
“선생님, 도대체 이유가 뭔지 좀...”
“와, 선생님, 진짜 좀 머리가 이상한 거 아녜요?”
“뭐라고? 이 녀석들이.”
연호는 웃으며 받아 넘겼다. 질문을 한 학생은 연호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물었다.
“이유가 뭐예요, 선생님?”
“이유? 뭘 그런 것까지...”
연호는 아이들에게 휘말리지 않고 꿋꿋이 버티며 수업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수업 시간에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학생들의 말문을 막기 위해 엉뚱한 소리를 하긴 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고래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은 우주와 별 다음으로 갖고 있었던 연호의 환상 중에 하나였다. 30년을 넘게 묻혀있던 고래에 대한 환상이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신기하면서도 어리둥절했다.
‘내가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다니, 암만 생각해도 정상이.....’
집으로 돌아온 연호는 한동안 만지지 않고 두었던 천체망원경과 관련 장비들을 꺼내 관측을 준비했다. 밤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어 별들을 관측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덥다는 것 말고는 다 좋았다. 오랜만에 연민과 같이 관측하고 싶었지만, 지방에 있는 서점으로 외근을 가야 한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왜 하필 내일이야?”
많이 아쉬운 것은 아니었다. 동생이 직장에 잘 적응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옥상에 올라가기 전, 작업실을 막 나서려는 참이었다. 그때 발자국 소리와 함께 작업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호는 당연히 동생일거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노크는 무슨. 일찍 잔다더니, 얼른 들어와.”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숙희였다.
“어? 엄마가 웬일이셔, 아직까지 안주무시고?”
숙희는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응, 자야지. 근데 너는 안자고 또 뭘 하려고 그래?”
“나야 뭐..., 조금만 있다가 잘 거야.”
“그래. 너무 늦게 자지 말고. 요즘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잘 먹고 다녀.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면 혼자 담아두지 말고, 알겠니?”
“아이고, 알았어. 엄마는 왜 나만 보면 살이 빠졌다고 그래? 이 젊은 아들 걱정 붙들어 매시고, 아버지 걱정만 하셔. 아버지는 요즘 어때? 지금 주무시나?”
“응, 주무셔.”
숙희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글쎄다. 구내염인지 뭔지, 면역이 떨어지면 그렇다는데 뭘 해도 잘 낫지 않으니까 답답하지 뭐. 입안이 허는 것 말고는 다른 증세가 없으니까 당신은 괜찮다고 하는데, 솔직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병원을 몇 군데 더 가보고 싶어도, 의사들은 다 못 믿겠다며 저렇게 안 가시려고 하니...”
“내가 아버지하고 한 번 얘기해 볼까?”
“아서라, 아서. 괜히 다른 얘기로 불똥이 튀어서 좋은 소리 못 들을라. 그냥 가만히 있어. 내가 잘 설득해 볼 테니까.”
결혼도, 그렇다고 특별히 독립도 하지 않고 집구석에만 처박혀 하늘만 쳐다보는 아들이 남편에게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숙희는 갑자기 연호가 직접 찍어 방에 걸어 놓은 사진들을 둘러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칭찬을 늘어놓았다.
“우리 아들, 어쩜 이리도 사진을 잘 찍을까?”
연호는 뜸을 들이는 숙희를 보면서 웃었다.
“아, 엄마? 할 말 있으면 돌리지 말고 얼른 해.”
“네가 하도 그런 얘길 싫어하니까 그렇지. 왜 이렇게 아들 눈치를 보는지 나도 정말 모르겠다!”
숙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아들. 너 어렸을 때, 저 큰 길 앞에 살던 엄마 친구 생각나니? 우리가 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말이야.”
“누구?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잘 모르지.”
“아 왜, 선화라고 아버지가 군인이었고, 걔 엄마는 선생님이었잖아. 너랑 같은 초등학교 나왔고, 또 걔네 집에서 생일잔치도 했었지, 아마. 가족들끼리 가끔 저녁도 먹고, 그리고 음..., 선화 걔 언니가 둘이 있는데, 왜 그중에 큰애가 연정이랑 동갑이었잖아. 그때 찍은 사진도 어디 있을 거야. 잘 생각해봐.”
숙희는 아들이 빨리 기억해 내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 중이던 연호는 생일잔치를 했었다는 말에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의 생일잔치에 초대된 기억이라고는 그때 딱 한 번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숙희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라도 더 끄집어내서 아들의 기억을 빨리 깨우려고 안달이었다.
“맞다, 맞다! 걔가 2학년인가 그때, 운동장에서 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는데, 네가 피를 흘리며 울고 있는 걔를 업고 양호실에 데려다준 적도 있었어. 그래, 그래! 이제 진짜 기억나지? 그치?”
“아, 혹시, 선화?”
“맞아, 선화! 너도 기억하고 있었네.”
“그 이름, 진짜 오랜만이네. 걔가 나보다 두, 세 살 어리던가?”
살짝 미소 짓던 연호가 궁금해 하며 물었다.
“근데 갑자기 왜, 엄마?”
“아니, 엊그제 걔 엄마랑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돼서 만났는데, 걔가 아직 미혼이라잖니, 글쎄. 직업은 제 엄마처럼 학교 선생님이라는구나. 네 얘기를 했더니, 그 엄마가 네가 보고 싶다며 막 수다를 떨지 뭐니.”
“근데 엄마. 지금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숙희는 아들을 쏘아보았다.
“너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니? 뭐긴 뭐야, 오랜 만에 아는 사람 만나서 반가웠다는 거지. 그리고 선화도 그렇고, 너랑 만나보는 것도...”
연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숙희의 말을 막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엄마? 누굴 만나, 만나기는!”
“야! 젊은 애들끼리 좀 만날 수도 있지, 뭘 그래? 너희들이 예전에 친하게 지냈으니까 이렇게 어른이 돼서 다시 만나면 재미있을 거 아냐. 만나서 안부도 묻고, 옛날이야기도 나누고, 얼마나 좋니.”
연호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나, 낯선 사람 만나고 그러는 거 싫어하잖아. 엄마도 알면서.”
숙희는 대뜸 언성을 높였다.
“선화가 낯선 사람이야? 평생 혼자 살래? 이렇게 집에 틀어박혀서 뭘 하는지도 모르게 왔다 갔다 하다가 늙는 게, 네가 원하는 거야?”
“엄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연호는 숙희를 더 이상 자극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내가 지금은 아직 준비가 안돼서 그러는데, 좀 기다려 주면 안 될까?”
“사람 만나는데 무슨 준비를 해? 만나다 보면 친해지고, 없던 감정도 생기고 그러는 거지. 인생이 미리 준비한다고 어디 다 되는 거니? 그렇게 쟤고 망설이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 다 떠나고 없어진다, 너? 그리고 엄마나 아버지가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엄마!”
연호는 숙희를 노려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알았으니 그런 말은 하지 말라는 압박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한 번 만나볼 테니까, 이제 그만.”
숙희는 연호가 이렇게 빨리 승낙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눈치였다. 그녀는 아들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마구 비비며 기뻐했다.
“왜 이래, 엄마.”
방을 나서 1층으로 내려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더없이 경쾌하게 들렸다. 연호는 괜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까짓 거, 저렇게 원하시는데, 못할 건 또 뭐냐? 지금까지 뭘 잘한 게 있다고. 눈 딱 감고 한 번 만나면 되지 뭐.’
연호는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의 별들을 관찰했다. 도시에서 별을 관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쏟아지는 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구름이 없어 나름 관찰하기 좋은 날이었다. 별을 관찰할 때면 늘 그렇듯 설렜다.
“이럴 때, 영화처럼 별똥별이 쫙 하고 한 번 지나가 줘야 하는데 말이야.”
도시에서 육안으로 별똥별을 본 것은 초등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다.
“오늘은 토성을 살펴볼까?”
연호는 연정의 영향을 받아 실제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이 어떻게 관찰하고 무엇을 연구하는지 보고 주워들어 알고 있었다. 단순히 관측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취미 이상의 행위였다. 주변에 놓인 학술서나 자료들, 장비들만 보면 그는 영락없이 천문학자였다. 연호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연정과 진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정은 대전에 있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우주위험감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학창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이후 이곳에서 연구원부터 시작해 지금은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진오도 대전의 한 대학에서 우주물리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다른 곳에 있는 대학에 갈 기회도 있었지만, 가족과 떨어지는 것이 맘에 걸려 이곳에 있는 대학을 택했다는 것만 알아달라며 연호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연정과 진오는 자신들의 논문이나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면, 연호를 마치 보조연구원이나 조교처럼 활용했다. 연호의 수학적인 능력을 이용하여 자료의 계산을 시키기도 했고, 집에 설치되어 있는 고가의 전문적인 장비들을 이용해서 그에게 관찰을 시키기도 했다. 단순한 일이었지만, 부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일들은 억지로 시킨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연호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참여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이, 보조연구원! 당연히 이 시간에 안자고 있겠지? 지금 메일로 자료 하나 보냈으니까 잘 검토해 보고 시간 날 때 연락해 줘. 지금 열어보지는 말고. 지금 보면 또 그거 살핀다고 밤 샐 거 아냐? 제발 건강 생각해서 일찍 자라. 그리고 조만간 연민이하고 한 번 내려와. 오랜만에 우리끼리 뭉쳐보자. 그럼, 답장 안 해도 되니까 얼른 자.」
토성의 관찰을 마치고,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려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연호는 누가 보낸 문자인지 알고 있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늦은 시간에 누구야? 또 어떤 녀석이...’
시험 기간이면 늘 있는 일이었다. 시험이 코앞에 닥친 학생들의 질문세례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시기였기 때문에 연호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응? 누나잖아? 웬일이야, 이 시간에?”
연정의 당부는 다 헛된 것이었다. 궁금함과 호기심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연호에게는 없었다. 연호는 지체하지 않고 당장 메일을 열어 자료를 받아보았다. 보기에도 어려운 수식과 기호들, 그리고 천체를 찍은 사진들로 가득한 문서들이었다. 그냥 보기에도 꽤 많은 양이었다. 연호는 관측을 마치고 다시 작업실로 내려가 자료를 출력했다. 찬찬히 자료들을 살피던 그는 호기심을 잔뜩 품은 채 완전히 몰입하기 시작했다. 내일로 미룰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밤을 꼬박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당장 확인을 해야만 했다.
‘그래!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내가 언제 내일 따지면서 살았냐?’
그의 눈과 귀는 이미 저 먼 우주를 향해 열려있었고, 정신과 의식은 칠흑 같은 절대 고독의 공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