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처음 맡은 업무 진행 (1)
# 린
윤은 평소와 같이 6시에 일어난다. 일어났을 때 보이는 것들은 인간계의 물건들뿐이었다. 아무리 수십 번을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느껴지는 두통….
이 정도로 잘 아프지 않은 자신이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머리가 심하게 지끈거리며 아프다…. 어제 서류를 보면서 머리로 구상한다고 뇌를 심하게 이리저리 썼더니 아무래도 이 꼴이 난 모양인 것 같다. 윤은 혹시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도윤이를 크게 부른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칸은 윤이 자신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황급히 문을 열고 윤의 곁으로 후다닥 뛰어온다. 도윤이는 윤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침실에 있는 모습을 보고는 안절부절못했다. 윤은 자신의 곁에 와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칸을 보고는 입을 연다.
“약 좀….”
“많이 아프신 겁니까?”
“좀….”
“네….”
도윤이는 걱정되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얼른 윤의 침대 왼쪽 서랍에서 알약을 꺼내 물과 함께 건넨다. 윤이는 받은 알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신다. 윤이가 마신 컵을 침대 옆에 있는 서랍장 위에 올려놓자 칸은 정말 괜찮겠냐며 쉬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며 말하지만, 윤이는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으며 관자놀이를 누르며 다른 한 손을 들어 괜찮다고 한 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간다.
화장실로 들어간 아얀이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순간 굳었다. 지금의 자신은 어딘가 모르게 퀭해 보였다. 어제 서류를 보면서 신경을 아무래도 써서 그런 것 같았다. 이렇게 신역을 써본 적은 잘 없기도 했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최악의 상황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돌아갈 수 있게라도 하려면 여러 방면으로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 윤이 씻고 나온다. 역시나 칸이 오늘 입고 나갈 옷을 꺼내 놓았다. 윤이는 옷을 보고 한숨을 쉬다가 옷을 갈아입는다. 윤이와 도윤이는 외출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온다. 칸은 윤이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고 반대편의 창고에서 차를 끌고 나온다.
윤이가 차에 오르자 도윤이는 차를 출발시킨다. 차로 20분 정도 가면 있는 회사 Wevip, 그곳에서는 상품들이 매우 좋지 않아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차근차근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자면, 첫째, 상품을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계절, 유행, 나이 등을 알아보지 않았다는 점, 셋째, 직원들이 할 의지를 잃어버렸다는 점, 넷째, 재료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좋은 재료들이 아니었다는 점, 다섯째, 소문으로 인해 이름만 있는 회사가 되었다는 점, 여섯째, 의상을 입힐 모델이 없다는 점, 일곱째, 사가는 이도 없고 판매를 해 줄 사람도 없는 매우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이라는 결과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품을 만드는 것과 모델, 광고 제작이라는 건데…. 그 전에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떠한 디자인을 조금 더 선호하는지, 상품을 착용했을지 어떠한지,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아니면 조금 더 이랬으면 하는 바람은 없는지 등을 알기 위해서는 설문지를 하는 게 좋겠지…. 그렇다면 직원들에게 설명부터 해야겠군….
그리고 상품을 만들기 전에 직원들의 마음이 어떤지부터 살펴봐야겠군. 그래야 상품을 만드는 데에 있어 서로에게 트러블이나도 잘 풀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니까. 또 할 의지가 있는지도 알아야겠지. 할 의향도 없는 이를 붙잡고 시킨다고 한들 불만만 느낄 게 분명하지만, 능력도 좋고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면 그 불만도 사그라들겠지. 그런데도 할 의지가 없다면 할 의지가 있는 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의 성적을 내는 수밖에….
윤이가 이렇게 한참이나 생각을 하고 고개를 들어 창가를 보았을 때 차는 이미 회사 앞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도윤이는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자 윤이가 내린다. 그리고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가는 도윤이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윤과 도윤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장실로 향한다. 사장실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앉는다. 윤은 소파에 앉으면서 손은 이마를 짚으며 골똘히 생각한다. 도윤이는 혹시 윤이 머리가 아픈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윤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말한다.
“윤님, 지금도 머리가 아프신가요?”
“아니…. 그것보다 설문지부터 만들어야겠군.”
윤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윤이 일어나자 도윤도 같이 일어난다. 디자인팀실에 가야겠다며 사무실을 나가자 도윤이 그 뒤를 따라간다. 디자인팀이 있을 5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윤은 걸음을 재촉해 디자인팀 사무실에 들어간다.
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는 디자인팀 직원들이었다. 직원 중에서 한 직원이 윤을 보고 인사를 하고 말한다. 다른 직원들도 모여 인사를 한다.
“정 사장님, 안녕하세요.”
윤은 한 직원이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끄덕거린다. 그리고 직원들의 얼굴을 보고 목에 걸려 있는 사원증에 이름을 보고 직원들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보고는 입을 연다.
“모두 고개를 들어주세요. 먼저 이 일을 하기 전에 저는 여러분의 의지를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저희 의지요…?”
“네, 여러분의 의지를 듣고 싶더군요, 제가 내리는 지시에 따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죠.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의견도 없이 저 혼자 마음대로 결정해 여러분에게 하라고 시킨다는 것은 불만을 쌓이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생각해 이것은 매우 좋지 않다고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아.. 네..”
“그럼, 먼저 말씀해 주실 분이 계신가요?”
디자인팀 직원들은 윤의 말에 어찌해야할지 난감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누가 사장이라는 사람이 직접 직원들의 사무실에 방문해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해 달라는 이가 있겠는가. 그리고 어느 누가 사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쉽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윤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윤의 무표정에는 그 어떠한 의도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윤은 직원들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닦달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직원들이 제 생각을 말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10분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서로의 눈치를 보기만 하던 직원 중에서 마른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한다.
“저요.”
“네, 말하세요. 유환씨”
윤이 말하라는 권유를 내보인다. 유환은 아직도 긴장된다. 혹여나 말실수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유환이 큼큼거리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한다.
“저는 이곳에서 일한 지 6년이 되는 황보 유환이며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항상 다른 상사분들께서는 위에서 지시하면 따르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되질 않을 거라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발생하면 직원들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였습니다. 또 지시만 하시고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죠. 이제야 말하는 것은 더는 이런 식으로 일로는 어디를 간다고 하더라도 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위 상사분들은 늘 자리를 비우며 다른 일을 하기 바빴습니다. 그것도 아주 개인적인 문제로요. 저는 제 자신을 위해서라도 가족을 위해서라도 버티며 일은 해오고 있지만 다소 지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가 싫은 게 아닙니다. 사람이 싫어졌을 뿐입니다. 그래도 이때까지 회사에 몸 담그고 지냈는데 떠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계속 일은 하고 싶습니다.”
“네,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요. 다음으로 이야기하실 분 있습니까?”
윤이의 말에 모두 서로 눈치만 보기 바빴다. 솔직히 어떻게 자신 앞에 있는 사장님의 얼굴을 보며 사장님 앞에서 이야기를 꺼낼 수가 있겠는가…. 유환을 빼고 다른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서로 먼저 이야기를 하라는 눈짓을 보내기도 했다.
윤은 직원들이 서로 하라는 눈짓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도 그저 가만히 기다려 줄 뿐이었다. 그런 작은 시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혜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이곳에서 4년을 일한 과장인 최혜원이에요. 정확히는 1년은 육아휴직을 내고 1년은 휴직과 2년을 재택근무로 일을 했었습니다. 분명 휴직하기 전에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육아휴직 때도 재택근무로 일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가능하다길래 일을 했었습니다. 1년의 휴직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수술이 있어서 잠시 휴직을 냈습니다. 임시로라도 사람도 구했고요. 2년동안 재택근무를 하게 된 이유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장례와 이런저런 법적인 일이 생겨 회사는 가끔 나오는 대신에 재택근무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가능하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월급을 받고는 충격이었습니다. 왜 월급이 이것뿐이냐고 항의를 했더니 1년 휴직을 쓰고 2년은 회사에 출근한 날을 기록한 것으로 준거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분명히 그렇게 가능하다고 얘기해서 한 거였는데 말을 바꾸어 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아직도 기업에서는 그 일로는 일도 아니라며 받지 못한 500만 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만둘 생각으로 각오하고 왔는데 사장님과 대표님께서 도망을 가셨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어요. 잉 일을 좋아하는데 이대로 그만두기에는 싫기도 합니다. 또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그만두고 싶기도 해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러면 저를 믿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혜원 씨가 못 받은 500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상품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에게는 한사람이라도 필요합니다.”
“네,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혜원 씨”
혜원이의 말에 용기라도 얻었는지 미라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이곳에서 일한 지 1년 되는 이미라입니다. 저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가 땅따먹기하듯이 회사들이 하나둘씩 어느 회사에 먹히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갑작스럽게 기업이 휘청거리더니 이렇게 최악의 상황이 왔어요. 그래서 다른 회사를 알아봐야 하는 건가 하고 고민하던 중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어디를 가도 회사가 회사를 먹는 상황이니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사장님도 대표님도 안 계신다고 하니 더욱 머리가 복잡해져서 지금으로써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겠네요…. 저도 이곳에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일을 해보면서 찾아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미라 씨”
“네, 저도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미라와 윤의 대화가 끝나자 도현이 자신도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도현이는 윤을 똑바로 보며 말한다.
“저는 일한 지 3년이 되어가는 대리인 김도현입니다. 예전에 서류를 올릴 때 전 사장님께 항의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상황이 많이 안 좋으니 조금 더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요.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저를 보고는 불같이 화내면서 말씀을 하시더군요. 너 같은 놈이 경영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어디서 감힐 가르치려 들냐고 당장 내 눈 앞에서 썩 꺼지라고 말이죠. 그때까 딱 3년이 채워지는 날이였죠. 그때 그 말을 듣고 솔직히 멘붕이 상태에서 일을 한게 대다수였어요. 모두들 직원을 잘 만나기는 했지만 사장을 잘못 만나 이런 일 저런 일이 생겼습니다.”
“그 말을 제가 들었다면 저도 도현 씨와 같았을 겁니다. 그 말은 제가 들어도 거북한 말이네요. 그리고 모두 어떤 마음이신지는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제시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시요?”
“네, 바로 설문지입니다. 설문지를 만들어 직원이나 일반인들을 통해서 만들었으면 합니다. 설문지를 만들 때 나이도 생각하며 만드면 좋을 것 같네요. 그 설문지를 바탕으로 샘플을 만들어보도록 하죠. 이번 일은 굉장히 바빠질 겁니다. 지금보다 빠르게 진행이 될거예요. 설문지를 일주일 안에 설문지 내용을 각자 만들어주세요. 그럼 모두 수고해요.”
“네!!”
윤이 말을 마치고 모두 환하게 밝게 좋은 미소를 띠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일을 하기 시작한다. 윤은 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디자인팀 사무실을 나간다. 도윤은 정확하게 지시하는 그 모습에 환하게 웃는다. 먼저 나간 윤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 뒤로 도윤이 따라간다.
윤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무언가를 한참이고 생각을 한다. 생각하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는다. 도윤은 그런 윤의 모습을 본다. 여전히 일에 집중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무서울 정도다.
“혜원 씨가 일했지만 받지 못한 돈까지 마련해야 한다면…. 내가 생각한 예상 매출 금액보다 10배, 20배는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윤님, 마음이 복잡하시다는 건 알겠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그러다 몸 망가지십니다. 그러면 일에도 지장이 생기니까요.”
“그래…. 하지만 뭐라도 해야 뭔가가 나올지도 모르겠지….”
‘역시…. 일 처리는 정말 확실히 하시는 분이시네요. 아무래도 왜 이곳에 오시게 된 건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에요.’
윤은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자신 앞에 있는 종이와 펜을 꺼내고는 종이에 어떤 글을 끄적이고 있다.
옆에서 윤의 이런저런 모습을 지켜보던 도윤은 원래 자신이 해야 할 일인 감시·감독으로서 손에 들고 있던 체크리스트에 체크한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