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수현이 말도 없이 사라진 마지막순간까지. 11년 전, 수현과 함께했던 약 20일간의 기억이 걷잡을 수 없이 진호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기억의 파편마다 박혀있는 츄파춥스 사탕을 품에 넣은 진호는 사실, 이 순간을 그리며 양양에 달려온 것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수현을 만나기 위한 부스터에 불과했다.
진호와 수현의 입안에서 사탕이 녹아드는 사이, 새파랗던 하늘이 붉게 물든다. 따가운 햇살에 찌푸리고 있던 두 사람의 미간이 펴지고, 시원한 바닷바람에 두 사람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맺힌다.
“너무 좋다.”
수현이 다 먹고 남은 사탕막대를 입에 물고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내가?”
진호가 바다를 집어삼킨 노을을 황홀한 얼굴로 바라보며 슬쩍 던진다.
“다.”
수현이 황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진호에게 손을 뻗는다.
“병진형님한테 한 소리 듣기 전에 들어가야지.”
진호가 뚱한 얼굴로 수현의 손을 탁 치고 일어나더니, 수현을 밀쳐내고 장례식장 건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늦게 온 사람이 병진형님이랑 자기다!”
또 속았다는 얼굴로 수현이 갖은 짜증을 내며 진호의 뒤를 따른다.
병진이 앞으로 다시는 헤어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오늘밤은 무조건 셋이 같이 잘 거라고 으름장을 놓은 터였다. 진호와 수현 모두 병진이 과거에 코골이로 주민신고를 받은 전력이 있단 걸 알기에 분유 먹은 힘까지 쥐어짜 내달린다.
“이 자식들 나 빼놓고 어디 가서 자나했더니. 야야 안 일어나? 발인 안 할 거야?"
태식의 영정사진이 마련된 단상 뒤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마주보고 잠들어 있는 진호와 수현 앞에 병진이 뾰로통한 얼굴로 서서 꿈쩍도 안 하는 두 사람을 발로 번갈아 가며 툭툭 차고 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어요?”
그나마 양심이 있는 수현이 주변을 살피며 일어나지만, 진호는 여전히 숙면 중이다. 병진의 무언의 압박에 수현이 진호의 옆구리를 퍽퍽 쳐보지만, 진호는 깰 기미가 없어 보인다.
“벌써? 서핑동호회 사람들은 진즉에 영안실 앞에 서서 관 들고 나올 준비하고 있는데, 아들이란 놈들은 이 좁아터진 구석 숨어서 여직까지 잠이나 자고 있고. 아니, 잘 곳이 사방에 이렇게 널렸는데 굳이 찾기도 힘든 여기서 잔 건 또 뭐야? 나랑 자는 게 그렇게 싫었냐? 치사한 놈들.”
“형님 코골이 소리에 도망을 치다 치다 여기까지 온 거 아닙니까. 형님, 코골이 수술 하실 생각 없으세요? 심각합니다. 정말.”
정말 병진의 코골이에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수현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그러나 병진은 귓등에도 듣지 않고, 수현의 머리 위로 관을 들 때 쓸 하얀 장갑을 던진다.
“새삼스럽게. 말 돌리지 말고 얼른 일어나! 양진호! 안 일어나!”
“잠 좀 자자 좀! 그 놈의 코골이는 늙지도 않아? 설마 했는데 어떻게 더 심해졌냐? 아는 선배 중에 코골이 수술 명의 있는데 수술 좀 받읍시다. 수술비는 내가 내줄게.”
진호가 일어나자마자 병진덕분에 한숨도 못 잔 갖은 히스테리를 쏟아낸다. 그러나 병진은 멀쩡한 사람 병자 취급하지 말라며 발인이 이뤄질 지하2층으로 쌩하니 사라진다.
“사람 안 바뀐다는 말 누가 만들었냐? 완전 맞아. 넌 잠 좀 잤어?”
“내 얼굴 안 보여? 병진형님 또 난리치기 전에 내려가자. 태식이형님 마지막 가는 길에 우리가 없음 안 되잖아.”
수현이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진호에게 내민다. 수현의 손을 맞잡고 일어난 진호가 자신과 수현의 옷매무새를 차례로 정돈한다.
“이제 좀 맘에 들어?”
“누구 손길이 닿았는데. 당연하지.”
피식 웃고 돌아서는 수현을 진호가 뒤따르다 갑자기 멈춰 선다. 내내 잡히지 않던 무언가를 손에 잡은 듯 확신에 찬 얼굴이다.
“야 김수현. 너 왜 거짓말 했냐? 그 셔츠. 내꺼 맞잖아.”
“헛소리하는 걸 보니 잠 못 잤다는 말이 맞네. 네 거라고 셔츠에 이름이라도 새겨놨냐?
“양진호. 안 보이냐?”
순간, 뭔가 생각난 듯 수현이 황급히 정장소매 끝을 당겨 삐쭉 튀어나온 셔츠소매 끝단을 숨긴다.
“어쩌나. 이미 다 봤는데.”
진호가 어릴 때부터 미자는 진호의 모든 물건에 이름을 새겨 넣었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걱정에 시작된 행동이었지만, 실은 어릴 때부터 워낙 활동적이었던 손자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할머니의 미아방지 법이기도 했다. 미자가 죽은 뒤에도 진호는 자신의 모든 물건에 ‘양진호’ 세 글자를 박아 넣었다.
“왜? 줘 놓고, 이제 와서 치사하게 뺏겠다는 거야?”
“너 나 좋아하냐?”
“미친놈 뭐래. 헛소리 하는 것 보니 잠 못 잔 거 맞네.”
“조문하러 누가 그런 셔츠를 입고 올까? 굳이 그걸 아빠 장례식장에 왜 입고 온 거야? 누굴 보여주려고? 여태껏 너처럼 예의 차리기 좋아하는 놈을 나는 본 적이 없어. 11년 전에 내가 벗어놓은 옷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이유가 뭐야?”
“좋아한다는 사랑고백은 내가 아니라 네 여자 친구한테나 가서 구걸해. 나 먼저 간다.”
진호가 아는 수현이라면,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상태로 화를 내거나 말끝을 얼버무렸어야 했다. 그러나 수현은 진호의 예상을 보란 듯이 뭉기고, 장난치는 아이를 꾸짖는 어른인 양 천연덕스런 말을 던지고 태식의 뒤를 따른다.
“재수 없는 새끼. 사랑고백? 개뿔! 야 야 같이 가!”
하룻밤 새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숨 막히는 긴장감과 팽팽한 기 싸움이 사그라진 자리에 장난을 주고받을 정도의 여유가 들어섰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 마음을 들킬까 조마조마하며 내 감정의 크기를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작게 보이려 갖은 눈치 싸움을 벌였던 두 사람 사이에 금방이라도 끝날 수 있는 찰나의 평화가 깃든다.
태식의 영정사진을 든 진호를 필두로 수현과 병진, 서핑동호회원 몇몇이 태식이 잠든 관을 들고 운구차 앞에 선다. 그 뒤로 ‘양브로’가 생긴 이래로 10년 이상 선생과 제자로 태식과 함께 해온 서핑동호회 사람들이 장례식장 건물 앞 공터를 가득 메우고 있다.
관이 들어갈 운구차의 트렁크가 열리고, 숨죽여 발인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운구차에 관이 실리고 일동 묵념이 이어진 뒤, 트렁크 문이 닫힌다.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쓰는 사람들 사이로 유독 눈가가 메말라있는 진호가 눈에 띈다.
“진호야,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조문객들에게 인사해라.”
진호가 병진의 안내에 따라 몸을 돌려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한다. 족히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진호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진호만 여전히 몸을 굽히고 있다.
“그만하면 됐어. 이제 일어나도 돼. 양진호. 일어나 임마. 야! 진호야?”
허리를 굽힌 채 목석처럼 서 있는 진호를 살피던 병진의 목소리가 놀라움으로 뒤바뀐다. 진호의 몸이 들썩이기 시작하고, 진호의 발치에 눈물이 툭툭 박힌다.
“아빠... 아빠... 미안해. 미안해 아빠. 미안해...”
태식의 영정사진을 부둥켜안고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진호를 수현과 병진이 양쪽에서 부축해 간신히 일으켜 세워 운구차에 태운다.
“수현아, 진호랑 같이 이 차 타고 와. 난 동호회 사람들하고 버스 타고 뒤따라갈게.”
“네.”
“진호 좀 잘 달래줘. 오래 전이긴 하지만, 그 놈 젤 잘 아는 놈이 너였잖아. 그나저나 아들이 맞긴 한가보다. 저리 서럽게 우는 걸 보니. 괜히 미안하네. 수현아, 잘 좀 부탁해.”
“네 형님.”
운구차 뒷자리에 앉은 수현이 조수석에 앉은 진호를 흘깃흘깃 쳐다본다. 그러나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는 지라 뭘 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수현이 숨이 넘어갈 듯 기침을 쥐어짠 뒤에야 진호가 고개를 돌려 수현의 상태를 살핀다.
“괜찮아?”
“넌.”
괜찮냐는 진호의 질문이 이렇게 기쁠 일인지, 수현이 반색하며 되묻는다.
“안 괜찮아.”
“태식이형님은 이미 너 다 용서했을 거야. 그러니깐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마. 그거야말로 형님이 원치 않는 일이야.”
“넌 항상 우리 아빠에 대해서 뭘 그렇게 잘 안다고 떠드냐. 옛날에도 그랬어. 네가 뭐라도 되는 것 마냥 사사건건 아빠랑 나 사이에 끼어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기 바빴잖아. 그게 우리 부자 사이를 더 갈라놓을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한 거야?”
“난 그저 너랑 태식이형님이랑 친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어. 그저 내가 도움이 되기만을 바랬어.”
“넌 그게 문제야. 지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놈이 허구한 날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사람 이상하게 만들었었잖아.”
“양진호.”
“왜? 내 말이 틀려?”
“그만하자. 지금 할 얘긴 아닌 것 같아. 그때 내가 잘못했다면 사과할게.”
급속히 냉랭해진 둘 사이의 대화에 운전석에 앉은 기사가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전화시키려 하지만 쉽지 않다.
“기사님, 여기 갓길에 차 좀 세워주세요.”
진호가 품에 안고 있던 태식의 영정사진을 수현에게 건넨다.
“됐다. 난 여기까지만 할게. 내가 날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 올 자리가 아닌데 괜히 온 것 같아.
“내리기만 해봐. 기사님, 그냥 가주세요. 절대 세우지 마세요.”
차를 세워야 할지 말지 기사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진호가 빨간 신호등에 멈춰선 차에서 내려 맞은편에 서 있던 빈 택시에 올라탄다.
수현이 바로 뒤따라 내려 보지만, 파란불 신호 방향에 서 있던 진호가 탄 택시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양진호 저 또라이새끼 진짜. 하... 형님, 섭섭해 하지 마세요. 진호가 형님 만나러 왔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저 놈한텐 큰 용기였을 거예요.”
수현이 뒷좌석에 놓인 태식의 영정사진을 가만히 바라본다. 태식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진호가 오기 전까지, 수현은 태식을 아빠처럼 따르고 대했었다.
똑 닮은 얼굴 때문에 주변에서 하도 부자 아니냐고 물은 탓도 있었지만, 언제나 따듯하고 살갑게 대해주는 태식을 볼 때마다 수현은 죽은 아빠를 태식에게 대입시키곤 했었다. 심지어 며칠 밤을 새가며 태식을 자신의 아빠로 만들어 달라고 빈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진호가 나타난 것이었다.
“수현아 진호 좀 잘 부탁해.”
태식은 수현을 볼 때마다 귀가 닳도록 이 말을 했다. 수현은 그렇게 뒷전으로 밀려났다.
진호가 말한 대로 수현이 진호와 태식 사이에서 이간질을 했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을 너무 사랑한 만큼, 수현은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게 싫었다. 중재자인양 천사인양 조력자인 것 마냥 행동했지만, 실은 방관자이기도 했다.
서핑샵 양브로는 여름철 대목을 맞아 서핑 하러 온 손님들로 항상 북적였다. 태식이와 수현은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바빴지만, 진호는 가게 건너편 방파제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이 모습을 하루 종일 지켜만 봤다.
그래서일까? 진호는 복순할매보다 더 수현을 꿰뚫고 있었다.
수현은 모두에게 성격 좋고 밝은 아이로 보였지만, 진호에겐 그늘진 우울한 친구로만 보였다. 이런 어둠을 숨기느라 남들 앞에서 항상 척을 하며 피곤하게 사는 친구로만 보였다.
이를 눈치 챈 수현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진호를 멀리하려했지만, 방파제 위에 붙박여있는 진호의 주변을 맴돌았고, 심지어 그의 관심을 받기위해 갖은 애를 썼다.
진호는 외면은 밝지만 내면은 어둡고 자존감이 낮은 수현과 내외면의 성질이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이었다. 자석의 양극단에 선 두 사람은 붙으면 붙었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러나 진호가 수현의 시선을 관심을 마음을 갈망했을 땐, 수현이 사라져버리고 난 뒤였다.
수현은 진호로부터 양양으로부터 자신을 알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쳤다.
그렇게 수현은 서울로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