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건너편 방파제에 진호와 수현이 나란히 앉아있다. 바람 좀 쐬고 들어와서 빈소를 지키라는 병진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중이다.
별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옆으로 민희가 조용히 다가와 나름 멀찍이 떨어져 앉는다. 병진의 배려로 상복으로 환복하고 화장까지 지우니 영락없는 상주의 모습이다.
수현이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가치를 입에 문다. 불을 붙이려 몸 여기저기를 훑어보지만 라이터가 없다.
“불 좀.”
“우리 오빠 담배 안 펴요.”
수현이 뻘쭘하게 물은 말에 두 사람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민희가 진호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진호가 할 말을 냉큼 낚아챈다. 민희는 진호가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라지만, 진호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만 무료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쉽네.”
수현이 피지 못한 담배를 다시 담뱃갑에 집어넣는다. 진호가 무릎 위에 턱을 괴고 수현 쪽으로 고개를 돌려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는 수현을 바라본다.
언제나 그랬듯, 빤히.
절로 수현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더니 수현의 손에 들려있던 담뱃갑이 방파제 아래 바다 속으로 풍덩 떨어진다.
“개시도 못했는데...”
한 개비도 펴보지 못하고 방파제로 떠밀려온 쓰레기와 뒤섞인 담배를 지켜보는 수현의 속이 꽤나 쓰려 보인다.
담배 한 갑에 4천원, 한 갑에 20개비, 하루에 3개비씩. 일주일치 간식이 눈앞에서 떠나가는 모습에 수현은 돈 생각이 절로 난다.
“넌 어떻게 여전히 구질구질하냐.”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 거 몰라?”
“여전히 사람 말 못 알아먹고 독해력 딸리는 것 보니 당장 죽을 것 같진 않네.”
“너야말로 여전히 싸가지 없는 것 보니 꽤나 오래 살겠다.”
“걱정 마. 곧 죽을 예정이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핑퐁처럼 이어지던 대화가 뚝 끊긴다.
곧 죽을 예정이라니...
수현은 진호가 한 말의 진의를 구분해내기 위해 진호가 그 말을 뱉은 순간의 호흡과 톤, 음정 등등 갖가지 항목을 재빠르게 헤아린다.
“미친놈. 죽는 게 쉬운 줄 알아?”
“복순할매나 우리 아빠가 죽은 걸 보면 꽤 쉬운 것 같은데... 복순할매는 그렇게 가면 안 되는 분이었어.”
진호의 입에서 복순할매 이야기가 나올 줄, 수현은 꿈에도 몰랐다. 진호 특유의 빈정거림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우리 할머니가... 왜?”
진호의 진심을 더 듣고 싶은 수현이 진호의 말꼬리를 잡아 대화를 이어간다.
“네가 홀로 남겨졌잖아.”
진호가 무심하게 툭 뱉은 말에 수현의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여유조차 없어 보이는 수현을 진호가 특유의 나른한 얼굴로 가만히 지켜본다. 진호의 흔들림 없는 공허한 눈동자에 평정심이 깨진 수현의 벌거벗은 몰골이 그대로 맺힌다.
창백해진 얼굴, 앙 다문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턱 근육, 피가 맺혔음에도 불구하고 손톱 거스러미를 가만 두지 않고 집요하게 뜯어내는 손가락, 정신 사납게 덜덜 떠는 다리까지.
그러나 수현의 시선은 담뱃갑에서 쏟아져 나와 바닷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담배개비에 박혀있다. 수현은 긴장감에 뻣뻣하게 굳은 목이 진호 쪽으로 움직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자신도 없다.
“안 그래도 불쌍했던 놈이 더 불쌍해졌잖아. 신경 쓰이게.”
“내가 언제 너한테 뭐 해 달라고 한 적 있어? 멀쩡한 사람을 왜 네 맘대로 바보 만들어?”
“우리 사이에 뭘 말해야 아는 거야? 됐다.”
약해진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수현이 일부러 진호에게 싸울 기세로 달려들지만, 진호는 수현의 감정에 손쉽게 말려들지 않는다. 그저 수현을 바라보는 공허한 눈빛에 점점 더 힘이 실리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숨어들 공간이 없는 수현 홀로 자신을 헤칠 의도가 전혀 없는 고양이에게 갖은 포악을 부리는 독 안에 든 쥐 마냥 진호에게 바짝 날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진호가 내뱉은 ‘우리 사이’라는 두 단어가 수현의 바짝 선 날을 자꾸 무디게 만든다.
“돈도 없는 놈이 담배는 왜 피냐. 그 돈 아껴서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다닐 수 없어? 네 옷에서 나는 나프탈렌 냄새 때문에 코가 없어질 지경이야. 독해력이 딸리는 널 위해서 굳이 보충설면 하자면, 건강에 좋지도 않은 담배를 왜 피우냐고. 국어사전에 겉치레라는 단어가 왜 있겠어? 우리나라에선 그만큼 겉모습을 중시하는데, 돈으로 바르지는 못하더라고 깨끗하게 입고 다닐 수 없냐고. 라는 의미로 말한 거였어.”
꽉 다문 수현의 입술 사이로 웃음이 삐죽 튀어나온다.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수현의 통제를 벗어난 감정이 진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일일이 반응하면서 희로애락 사이를 지 멋대로 날 뛰고 있다.
“왜 웃냐? 가소롭냐?”
“네 냄새는 그대로네.”
바다에 붙박여 있던 수현의 시선이 진호의 눈으로 옮겨간다. 조금 전까지 예민하게 날 서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수현의 눈에 그리움이 가득 배어있다.
11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수현은 눈앞에 일렁이는 바닷물을 다 마실 수도 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네 몸에서 나는 그 냄새 그거 우리 복순할매가 좋아했던 과일냄새랑 너무 비슷해서 기억하고 있었던 것뿐이니깐 오해하지 마.”
수현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다급하게 덧붙인다.
“다행이네. 난 또.”
순간 얼어붙었던 진호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츄파춥스 막대사탕을 꺼낸다.
“먹을래?”
뜻밖의 물건에 수현의 고개가 절로 갸웃 숙여진다.
“누구 때문에 이 맛을 안 뒤로 못 잊겠는 것 있지? 담배대신 찾을 만큼.”
사탕에 눌어붙은 껍질을 한 번에 까지 못하고 헛손질 중인 진호를 수현이 가만히 바라본다.
“매일 먹는다는 놈이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하냐? 줘봐.”
“들켰네.”
진호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더 꺼내 두 개를 수현에게 건넨다. 수현이 단숨에 껍질을 벗기고, 두 사람이 나란히 사탕을 입에 문다.
“이거였어?”
멀찍이 앉아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민희가 나직하게 혼잣말을 내뱉고 몸을 일으켜 세운다. 더 이상 방해할 생각 없다는 듯이.
사실, 양양 톨게이트를 지나기 전에 들른 마지막 휴게소에서 화장실이 급하다며 차에서 내린 진호는 츄파춥스 막대사탕 두 개를 사들고 돌아왔었다.
“내가 그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사왔어? 무슨 맛이야? 난 딸기 맛 좋아하는데.”
“네 거 아니야.”
“오빠 사탕 안 좋아하잖아. 그럼 내꺼지.”
“먹고 싶으면 가서 사와. 기다리고 있을게.”
진호는 민희에게 사탕 대신 카드를 건넸다. 민희는 클럽 카운터에 비치돼있는 사탕을 진호가 단 한번이라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진호가 사온 사탕이 당연히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냐 됐어. 늦기 전에 빨리 가자. 나 때문에 더 늦을 순 없잖아.”
“그래봤자 몇 분 차이인데 뭐. 걱정 말고 천천히 다녀와. 꿰맨 곳 아직 안 아물었으니깐 조심하고.”
“아니야. 빨리 가자.”
태식의 부고소식 연락을 받았던 그날, 진호는 민희가 일하는 클럽에 있었다. 진호는 큰 룸에 홀로 앉아 위스키 한 병을 비우고 있었고, 출근 시간이 8시인 민희는 샵에서 세팅을 마치자마자 진호가 있는 룸에 들어와 말없이 술잔을 비우는 진호 옆에 앉아 재잘재잘 떠들었다.
민희가 매달 가게에 벌어다 주는 돈을 진호가 일시불로 결제한 뒤로 두 사람은 하루의 마무리를 같이했다. 진호는 마시고, 민희는 떠들었다.
이날도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웨이터가 난처한 얼굴로 들어와 민희를 불렀다.
“뭐야. 지금 일하고 있는 거 안 보여?”
1분 1초도 진호와의 시간을 방해받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룸이 배정된 이후엔 무슨 일이 있어도 불러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지라 민희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미안. 손님이 널 급하게 찾아서.”
“이미 내가 돈을 다 지불한 걸로 아는데? 더 필요하면 말하지 그랬어.”
“아니 그게...”
“마담 불러와.”
어차피 말을 옮기는 중간자 입장인 웨이터와 얘기해봤자 말만 길어질 뿐이었으므로 진호는 바로 클럽의 책임자인 마담을 찾았다.
“누군데 그래?”
평상시와 다르게 바짝 질린 웨이터 얼굴에 민희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런 일로 진호가 신경 쓰는 것도 싫었지만, 클럽에서 짬밥으로 치면 제일 오래된 팀장급인 애가 신참이나 할 법한 실수를 한 걸 보면, 큰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민희야... 강철식 그 새끼 또 왔어.”
“경찰 불렀어?”
“사람이 죽어도 클럽에 절대 경찰 못 부르는 거 알잖아.”
깡으로 누구한테도 안 지는 민희가 온 몸을 벌벌 떠는 것도 모자라 식은땀까지 흘리다 이내 바닥에 주저앉았다.
“강철식이 누군데?”
처음 보는 민희의 모습에 진호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빠 여기 있어. 그 새끼랑 엮여봤자 좋을 것 하나 없으니깐 나오지 말고 여기 그대로 있어. 나 십분만. 십분만 있다가 올게. 나 거짓말 못하는 거 알잖아. 응? 내 사랑 심심해도 좀만 참고 있어요?”
민희가 애교스럽게 진호의 뺨에 입을 맞추고 최대한 밝은 얼굴로 룸을 나섰다. 웨이터에겐 무슨 일이 있어도 진호가 룸 밖으로 나오지 않게 막아달라는 신신당부를 남겼다.
그러나 이내 웨이터의 다급한 부름에 룸을 나선 진호 앞에 민희가 옆구리에 칼을 맞은 상태로 쓰러져있었다.
“진호씨 진호씨 어떻게 좀 해봐. 빨리! 진호씨 의사잖아!”
겁에 질린 마담의 쇳소리에 룸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피가 낭자한 채 쓰러져있는 민희의 몰골에 혹여나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싶어 비밀통로로 재빠르게 몸을 피했다.
“거즈랑 소독약 사올 수 있는 대로 다 사와요. 그리고 뜨거운 물도.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나갔어? 이럴 줄 알았으면서 나간 거지? 너 바보야? 바보냐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 민희의 상태를 살피던 진호가 결국 울분을 터뜨렸다.
매일 하는 일이 수술방에서 피 튀기면서 뼈를 깎고 살을 꿰매는 것이었지만, 미용목적으로 온 환자와 살해미수의 피해자가 된 민희는 엄연히 다른 상황이었다.
“오빠 화내는 거 처음 보네. 기분 좋다. 지금 나 걱정돼서 화내는 거야? 그런 거야? 난 괜찮아. 진짜 괜찮아. 울 오빠 겁먹은 얼굴 귀엽네. 나 몸에 상처 안 나게 오빠가 예쁘게 꿰매줄 거지? 오빠랑 바닷가 놀러가서 입을 비키니 다 골라놨는데 몸에 상처라도 나면...”
과다출혈로 민희의 의식이 점점 불분명해졌다. 진호는 웨이터가 사온 거즈로 민희의 옆구리를 지혈시키자마자 바로 민희를 자신의 병원으로 데려가 수술을 진행했다.
1-2시간 만에 의식을 되찾은 민희는 자신이 누운 침대에 기대 잠든 진호를 살펴보다 그의 손에 쥐어있는 핸드폰에서 우연히 태식의 부고 문자를 봤다.
“귀찮게 안 할게. 진짜야~ 오빠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입 다물고 옆에 가만히 있다가 올게. 나 이제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강남최고의사가 수술해서 그런가? 당기지도 않고 완전 멀쩡한데? 나 칼 맞은 거 맞아?”
몸이 전혀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민희는 진호 앞에서 스트레칭까지 해보이며 같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왠지 진호 혼자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단순히 이 이유 하나뿐이었지만, 숨만 쉬어도 장기가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따라가야 할 정도로 민희에겐 절실한 이유였다.
진호는 더 이상 민희를 말리지 않고 같이 차에 올라탔다. 사실, 11년 만에 양양에 혼자 갈 용기가 진호에겐 없었다.
그간 태식에게 온 수백, 수천통의 전화와 문자를 무시로 일관하다 태식이 죽은 뒤에야 찾아가는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태식의 영정사진을 혼자 마주 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민희의 재잘거림 탓이었을까? 표지판에 ‘양양’이란 지명이 보이고, 남은 거리가 줄어들수록 그동안 진호를 짓눌러온 죄책감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뜻하지 않은 그리움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이름이 진호의 뇌리를 뚫고 나와 새파란 차창 밖에 박혔다.
김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