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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세상이 멸망해서 엔딩 다시 씁니다.
작가 : 한잎이
작품등록일 : 2020.9.30

"헌신하면 헌신짝 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은 과로사로 죽습니다."

공포 게임을 만들던 여주, 이지은. 그녀가 만들던 <블러드 필드에서 탈출하는 방법> 프로젝트가 출시를 한 달 앞두고 엎어져 버린다.

그렇게 굴려댔으면서 엎어버린다고? 분노한 그녀는 게임의 모든 엔딩을 배드 엔딩으로 바꿔 버렸는데… 잠시만요. 그런데 제가 이 세상에 떨어질 거라는 경고는 없었잖아요!

원작의 게임 속엔 없던 캐릭터, 헤르미안으로 빙의하게 된 지은이. 게임 속 배경인 에니타스가 크리처 천지인 블러드 필드로 변하기 전에 탈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보지만. 동서남북, 사방이 배드 엔딩 뿐이다.

별별 노력을 다 해봤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헤르미안. 그녀의 앞에 낯선 생명체가 나타난다.

“나랑 계약을 맺자, 헤르미안. 마법청년이 되어 세상을 지켜보자고.”
그렇게, 기존에는 없던 히든 루트인 <가디언 특별 전형> 루트를 타게 된 헤르미안.

과연, 지은이는 이 세계의 엔딩을 제대로 다시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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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30 18:19     조회 : 292     추천 : 0     분량 : 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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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널티가 적용 됩니다.」

 

 그 목소리와 함께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5분간 과다 출혈이 진행 됩니다.」

 

 「5분간 시야가 흐릿해집니다. 」

 

 「5분간 신체 능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동시에 몸이 저린다 싶더니 이내 움직이기가 힘들어졌다. 상처 난 부위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앞이 안개 낀 것처럼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이럼 안 되는데…!’

 

 그 순간 또 다른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불완전한 정화의 진>

 

 「100퍼센트 완벽하게 그려진 정화의 진이 아닌, 불완전한 정화의 진. 완전히 정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정 확률로 정화에 실패할 수도 있다.」

 

 ‘젠장. 시니어를 정화하는 것까지 불확실해졌다고?’

 

 흐릿한 눈을 마구 비비며 시니어의 모습을 보려 애썼다.

 

 “끄…극……끅…….”

 

 육망성에 갇힌 시니어는 괴로운 듯 제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그녀는 또 한 번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가까이 다가가긴 커녕 내 한 몸조차 추스르기 힘든 상황.

 

 그때 구석에서 떨고 있던 로니가 한 발, 한 발 다가와 나와 시니어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헤, 헤르미안.”

 

 얼굴 가득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는 울먹이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부축하려 애썼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아까 심하게 말했어. 미안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게.”

 

 로니는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녀석은 이 와중에도 내 걱정을 한다. 오히려 매정하게 말했던 건 나였는데. 시니어를 버리고 가자고 한 건 나였는데, 왜 네가 나한테 미안해하는 걸까.

 

 “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거야.”

 

 로니는 나를 지키며 시니어의 칼질을 피해 복도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멍청아! 이런 상황에서까지 호구 같이 뭘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입이 움직이질 않았다.

 

 “흐……윽…… 윽…… 아아아악!!!”

 

 이윽고 육망성의 안에서 정화의 불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푸른색 불길은 시니어를 집어 삼킬 듯 넘실대기 시작했고 그 안에 갇힌 시니어는 고통에 몸부림 치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 시니어. 금방 다시 돌아올게.”

 

 로니는 입술을 꾹 깨물고 시니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나를 저택 밖으로 구출한 뒤 다시 시니어에게로 돌아올 심산인 듯 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만약 내가 정화의 진을 그리는 방법을 제대로 기억했더라면.

 

 만약 내가 처음부터 시니어를 버리고 가는 궁리가 아닌,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을까?’

 

 당장이라도 시니어 대신 내가 저 안에 갇히고 싶었다. 그러나 온몸이 마비 된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로니에게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내려와 1층에 도달했을 때였다.

 

 “…….”

 

 시니어의 괴로움에 찬 비명 소리가 사라지고,

 

 저벅, 저벅.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정화에 성공한 걸까?’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숨을 죽이던 그때였다.

 

 퍼어어억!!

 

 “아아악!!”

 

 우당탕탕, 커다란 소리를 내며 나와 로니의 몸이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으……흑….”

 

 내 옆에 떨어진 로니는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고 배를 움켜쥔 손에는 새빨간 피가 묻어나고 있었다.

 

 “명. 중.”

 

 계단 위에서는 피 묻은 대검을 든 시니어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내. 차례. 명중.”

 

 정화는 실패했다. 시니어는 이미 크리처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와 로니에게로 향했다. 나는 쓰러진 로니에게로 두 팔을 뻗어 그를 지켜보려 했다.

 

 “넌. 나.중.에.”

 

 그러나 시니어는 나를 차버린 뒤 로니에게로 다가갔다. 이윽고 그녀가 든 거대한 대검은 끔찍한 소리를 내며 로니의 몸을 관통했다.

 

 “아…… 아어어…….”

 

 로니는 아무 신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도무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왜?

 

 도대체 왜 그토록 사이가 좋던 쌍둥이들이. 어쩌다가 시니어가 로니를 죽이는 전개가 되어버렸지? 왜 그토록 사랑스럽던 아이들이 이런 결말을 맞이하는 거지?

 

 “아아악!!!!”

 

 악에 받쳐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시니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검을 거두더니, 이내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제. 네. 차례.”

 

 그녀가 내게로 다가와 검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멈춰라!!!”

 

 거대한 철퇴가 날아와 대검을 가로막았다. 챙강 소리를 내며 시니어의 대검이 저만치 날아갔다.

 

 “악마한테. 뒤진다고. 했다!!!”

 

 곰탱이는 머리에 피를 뚝뚝 흘리면서 시니어를 노려보고 있었다.

 

 “네. 차례?”

 

 시니어는 곰탱이를 죽일 듯 노려보더니 그의 몸에 주먹을 갈겼다. 커다란 충격이 가해졌을 텐데도 불구하고 곰탱이는 두 다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서있었다.

 

 “흑곰. 약속. 지킨다.”

 

 이윽고 그는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주워들었다.

 

 시니어는 아무래도 맨손으로는 녀석을 죽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저 멀리 떨어진 대검을 향해 걸어갔다.

 

 “헤르미안. 구한다.”

 

 그 틈을 타 곰탱이는 내 몸을 번쩍 안아들고 제가 부숴버린 문손잡이에 열쇠를 갖다댔다.

 

 철컥.

 

 그러자 거짓말처럼 굳게 닫혀있던 저택의 문이 열렸다.

 

 “고, 곰태…….”

 

 어눌하게나마 조금씩 마비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를 향해 고맙다고, 어서 같이 나가자고 말하려던 때였다.

 

 퍼어어억!!!!

 

 순간 거대한 바람이 불어왔다. 거대한 대검이 날아와 녀석의 배를 관통하는 소리였다.

 

 이윽고 흑곰 녀석의 얼굴이 구겨졌다. 무언가를 꾹 참는 듯 하던 그가 이내, 붉은 피를 토해냈다.

 

 “고, 곰태…… 곰… 허어어…….”

 

 녀석은 나를 열린 문 너머로 던졌고.

 

 “저 꼬맹이. 안 무섭다. 걱정 마라. 나. 이긴다.”

 

 이내 시니어의 대검과 함께 저택 깊숙이 끌려 들어갔다.

 

 끼이익…… 철컹.

 

 “…….”

 

 이내 거대한 저택의 문이 닫혔다.

 

 “……곰…….”

 

 저택 저 멀리 날아간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이끌어, 기고 또 기었다. 그렇게 기어서 저택 문까지 도착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저택 문을 잡아당겼다.

 

 덜컹, 덜컹.

 

 그러나 문은 거짓말처럼 열리지 않았다.

 

 ‘왜.’

 

 「저택 탈출 : 성공. 페널티가 점점 사라집니다.

 

 성공 보상으로 가디언의 능력치를 상승해주는 ‘신의 조각’을 100개 받았습니다.」

 

 신의 조각 따위 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왜.”

 

 조금씩 마비가 풀려오기 시작하자마자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있는 힘을 다해 발로 문을 차보았다. 몸을 문으로 던져보았다. 문은 부서지지도 않았다.

 

 문을 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도대체 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를 이 지경까지 만든, 그리고 내가 사랑하던 내 새끼들을 이렇게 만든 상황이, 모든 것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저주스러웠다.

 

 “아아아아악!!!!”

 

 손톱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문을 할퀴고, 또 할퀴었다. 그러나 저택 안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기만 했다.

 

 그 순간이었다.

 

 “꺄아아악!”

 

 저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저택 바깥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였다.

 

 무언가를 안은 여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여자는 온몸으로 그것을 껴안고 있었고 그 앞에는 이미 크리처가 된 여자가 길게 뻗은 촉수로 그의 몸을 관통하려 하고 있었다.

 

 “……구해야 돼….”

 

 미처 쌍둥이와 흑곰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크리처의 공격을 받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원에 있던 잔디 관리용 가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크리처에게로 달려가 그 날카로운 촉수를 잘라버렸다.

 

 “끼에에엑!!”

 

 크리처는 고통스럽다는 듯 온몸을 뒤틀었고 이내 내게 달려들 태세를 갖추었다.

 

 “……죽일 거야.”

 

 그러나 이미 주위 사람들을 잃은 내게는 크리처가 두렵지 않았다. 그저 원망스러운 대상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 괴물이 달려들 때를 맞춰 다시 한 번 가위를 휘두르려 할 때였다.

 

 “키에에에…….”

 

 순간 크리처가 꼬리를 내리더니 몸을 뒤로 돌렸다. 이내 그것은 어둠 속을 향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

 

 사실 여자를 구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나 자신을 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쓰러진 여자를 일으켜 세우려던 때였다.

 

 툭. 데구르르….

 

 그 순간 여자가 꼭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가 떨어졌다.

 

 ‘성수병?’

 

 푸욱.

 

 “쿨럭.”

 

 허리춤에 불에 데인 듯,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주…그….”

 

 부정확한 발음. 끊어지는 말투. 그리고 하얀 베일을 쓴 여자.

 

 “주그버……릴……거…….”

 

 얼굴이 뭉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셀…레나.”

 

 그녀는 이미 크리처가 되어버린 듯 정신이 나간 상태였고, 손에 들고 다니던 작은 비수가 내 허리에 박혀있었다.

 

 “꺄아아악!!”

 

 또 다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저택을 둘러싼 주변이 온통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 곳곳에 크리처를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니, 크리처를 피해 도망가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크리처들 중에서도 고도로 발달한 크리처들은, 같은 크리처들을 죽여 그 양분을 흡수하고 있었다.

 

 “하…하…, 하 이씨…….”

 

 이런 게 내가 만든 세상이었구나.

 

 게임으로 만들 때는 미처 몰랐다. 공포게임이 너무 순한 맛이라며 하도 게임 테스트 기간에 욕을 들어먹어서, 최대한 미친 세상처럼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잔혹하게, 최대한 자극적으로 해야만 한다고 여겼다. 유저들이 플레이 할 때, 최대한 공포스러워야만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곳곳에 사람들이 쓰러지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그런 애원은 전혀 통하지도 않는 세상에서, 나는 누구인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빌었다.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건 그냥 꿈일 뿐이고, 나는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그렇게 말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지. 이건 꿈이 아니야. 꿈이면 이렇게 고통스러울 리 없잖아.’

 

 칼에 베인 곳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아파왔다. 점점 정신은 혼미해져만 갔다.

 

 ‘그래. 꿈이 아니어도 좋아요. 거짓말이 아니어도 좋아요. 내가 정말 이 세상의 누군가로 빙의했고, 이게 나를 둘러싼 현실이라 해도 좋아요. 그냥. 적어도.’

 

 지금 이 상황을 바로 잡을 기회를 한 번만이라도 줄 수는 없을까요.

 

 ‘뭐든 할게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게요. 내 사람들을,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게요.’

 

 게임에서는 리셋이라는 게 존재하잖아. 원래 여기는 게임세계였잖아. 무한 리셋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 번 리셋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제발…….

 

 내가 듣지도 않을 누군가에게 애원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세상을 구원한다니.”

 

 순간 어둡게 내려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놔둘 수 없지.”

 

 그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고, 그 검에 셀레나의 목이 댕강, 떨어졌다.

 

 “오늘을 위해 꽤 많은 세월을 공들였으니.”

 

 푸른 달빛이 나를 향해 비추었고, 그 달빛과 함께 검을 든 남자도 자세를 낮추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지, 헤르미안?”

 

 새벽의 여명과도 같은 목소리로 그가 속삭였다.

 

 “아니. 다른 차원에서 온, 구원자라고 해야 하나.”

 

 메마른 눈빛으로 나를 향해 미소 짓는 그는 청안의 황태자, 반스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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