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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묘지기 아가씨 달리아
작가 : WATERS
작품등록일 : 2020.9.26

#능력녀 #감동물 #묘지기 #악령퇴치 #악마퇴치 #헌신남 #다정남


죽음의 신은 외눈을 잃었고, 왕국은 삼백 년 전부터 망자들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해 기어다니는 황야가 되어버렸다. 머스그레이브 일가의 묘지기인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인간을 배신하고 악령의 편에 붙은 자신의 아버지를 처단하러 황야를 건너 왕도로 향한다.

표지 일러스트 : Waifu Labs
추신 : 좌하단의 붉은 로고는 Waifu Labs의 로고입니다. 인공지능 기반의 캐릭터 포트레이트 작성 사이트로, 출판사가 아닙니다...

 
원정 (3)
작성일 : 20-09-30 17:40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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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브리택은 너무 눈치가 빨라요.”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네가 너무 겁이 없는거야, 달리아. 안 돼. 그건 절대 안돼.”

 “브리택, 하지만 저 악귀를 내버려두면….”

 

 달리아의 머릿속에는 온갖 끔찍한, 예상 가능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왕성이 무너지고 왕가가 박살난 지금, 몇몇 권력에 눈먼 인간들은 악마와 악귀과 눈앞에 있는데도 부질없는 인간 사이의 왕을 자처하겠노라고 협잡질을 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 한가운데에 제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악귀가 끼어든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나도 알아. 하지만 달리아, 어차피…저런 녀석이 한 마리는 아닐거야.”

 

 그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악귀가 오로지 단 한 명 뿐이라면 이미 저 악귀는 이런 깡시골에 처박혀있지 않을 것이다. 제아무리 머리를 이렇게 허접하게 굴려서 단번에 그 수가 들통날 정도의 모자란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미.”

 “맞아. 이미 인간들끼리의 싸움은 시작됐을거야. 저런 악귀는 몇 놈은 넘게 분명 더 있을거고. 네가 여기서 저 새끼한테 발목을 붙잡….”

 

 달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악귀 정도는 욕해도 되잖아.”

 “그래도요.”

 

 달리아는 그냥 그의 입술에서 욕이 나오는게 싫었다. 설령 그게 늑대개의 모습으로 뱉는 욕설이라도.

 

 “여튼, 저 악귀한테 발목을 붙잡힌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문제야. 넌…네 생각보다 중요해. 얼른 다른 영지들을 결집시키고, 다른 묘지기 가문들과 협력하고, 교회의 협력도 받아내야 하는 거 아니었어?”

 

 브리택의 말은 하나 하나가 다 옳은 말이었다. 심지어 이 폐허가 된 마을에는 그녀가 구해야 할 살아있는 인간도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저들은 살아있기는 했지만…그 영혼이 이미 악령이라는 점에서 재고의 여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달리아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브리택의 등에 올라탔다. 고글을 꺼내 눌러쓰고, 등자에 발을 단단히 박아넣었다..

 

 “준비됐어, 달리아?”

 “준비됐어요.”

 “어디로 가면 되지?”

 

 지도는 아까 봐두었다. 화이트우드 주교가 다스리는 실비아 영지는 조금 작긴 해도 아직까지 살아있을 확률이 높았다. 무엇보다 브리택의 속도로 달린다면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남서쪽.”

 

 브리택은 몸을 낮추었다. 그의 털이 빳빳하게 솟았고, 네 개의 다리에 힘줄이 솟구쳤다.

 

 “꽉 잡아.”

 

 바로 다음 순간, 브리택은 대포알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달리아는 브리택의 몸에 바싹 달라붙어서는 박살나는 교회 문의 파편을 피했다. 브리택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수십미터 바깥까지 달려나갔고, 아직 뒤에서 그들은 쫓아올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달려요, 브리택!”

 “알아!”

 

 사제의 모습을 한 악귀가 사태를 파악하는데 걸린 시간은 3초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3초 동안 브리택과 달리아는 이미 100여 미터는 넘게 주파한 상태였다.

 

 저 뒤에서 외침이 들렸다.

 

 — 잡아, 새끼들아!

 

 아마 저 악귀도 출발했을 것이다. 어지간한 늑대개라면 영혼이 날아오는 속도를 앞지르진 못할 터였지만, 브리택은 강력한 영혼이지 평범한 늑대개가 아니었다.

 

 “달리아!”

 “나도 알아요!”

 

 달리아는 두 손으로 은촛대지팡이를 꼭 붙잡았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는 금촛대에게 불꽃을 넘겨받은 은촛대. 은촛대로 이어가는 선대의 의무. 의무를 지키는 이 시대의 묘지기. 묘지기이기를 죽어서도 자처할 삶과 죽음의 의무자….”

 

 묘지기들의 기도문이었다. 묘지기들은 선조에게 기도를 올리는 존재들이었고, 달리아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더 읊어나갈 때마다 은촛대지팡이의 새하얀 불꽃은 파바박 튀며 커지기 시작했다.

 

 그 불꽃이 마치 벼락을 잘라다 묶어놓은 것만큼 위협적으로 변했을 때, 달리아는 뒤를 바라보았다. 두 팔에 손 대신 시커먼 낫이 붙고, 목은 기린처럼 길며, 그 얼굴은 사람이요, 그 몸통은 지네에 박쥐의 날개가 붙은 악귀가 따라오고 있었다.

 

 — 어린 묘지기! 나의 양식! 순순히 먹혀라!

 

 달리아는 그 악귀의 지능 수준이 악귀 치고는 처참하게 낮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통감했다. 보통 이 정도의 은촛대불꽃을 본다면 어지간한 악귀들은 오래된 영혼이 아닌 이상 주춤거리며 물러서기 마련이었다.

 

 “…이것은 집념에 가득 차 영면을 포기한 악귀에게 내려지는 징벌, 굽어보는 신을 대신하는 인간의 소망, 악을 영구히 잠재울—.”

 — 잡는다! 잡아먹는다! 갈가리 찢어서 먹는다!!

 

 긴 영창을 마침내 거의 끝마친 달리아가 마지막 호흡을 길게 들이마셨다. 쩌렁한 목소리로 비명처럼 외쳤다.

 

 “—눈부신 벼락!”

 

 그건 더 이상 불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벼락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만 같은 낙뢰가 달리아의 은촛대지팡이 끝에서 줄기줄기 터져나갔고, 악귀의 머리에 그대로 적중했다.

 

 — 끄, 아, 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기괴한 비명소리가 온사방에 퍼졌고, 녀석의 온몸에 새하얀 불꽃이 타올랐다. 은촛대지팡이의 불꽃은 다시 은은한 촛불로 돌아가 있었다.

 

 이윽고 악귀는 천천히 재가 되어 사라져갔다. 브리택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달리아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방금의 비명이 주변의 악령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브리택이 질주하면서 생기는 먼지구름이 둘의 위치를 알려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달리아는 제 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그녀가 묘지기로서 일으킬 수 있는 가장 강대한 주문이 바로 이 ‘눈부신 벼락’이었다. 몸에 있는 기력을 모조리 뽑아다 쓴 것처럼 피곤함이 몰려왔다.

 

 “…달리아, 괜찮아?”

 “나, 난, 난, 그러니까….”

 

 달리아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일단 조금 쉬어야했다. 달리아는 급하게 은촛대지팡이를 가죽끈으로 고정하고, 브리택의 목을 끌어안곤 엎어졌다.

 

 “브리택…남서쪽…부탁해요….”

 

 일직선으로 달리기만 하면 된다. 달리아는 감겨오는 눈꺼풀의 무게를 견딜 수가 없었다. 브리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그대로…쉬고 있어.”

 

 그의 시퍼런 눈동자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브리택은 더 이상 살아있는 커다란 늑대개의 모습이 아니었다. 의식을 잃은 달리아를 보호해야 했고, 그는 저 밑바닥에 고여있는 힘까지 쥐어짜기 시작했다.

 

 줄기줄기 뿜어지는 안광이 황무지를 가로질렀고, 새카만 꼬리는 안 그래도 길었던 것이 안개처럼 늘어지며 더 길어졌으며, 그 꼬리의 숫자는 아홉으로 늘어났다.

 

 브리택의 검은 털가죽에서는 바짝 곤두선 털 사이로 시커먼 기운이 뿜어졌고, 그의 그림자에서는 까만 가시나무 덩굴들이 줄기줄기 튀어나왔다. 송곳니와 발톱은 두 배는 넘게 길어졌다.

 

 ‘절대…절대 너를,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아.’

 

 그건 반쯤 악귀의 모습이었다. 그의 망집은 달리아일 것이 분명했다. 무시무시한 망집이었고, 만약 달리아가 그를 선택해주지 않는다면 그 자신의 영혼이 붕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원념이었다.

 

 단 한 가지, 그가 이토록 무시무시한 집념을 가졌음에도 악귀가 되지 않는 이유라고 한다면…그는 진심으로 달리아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령 달리아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그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 조용히, 조용히 소멸할 각오가 되어 있을 정도로.

 

 

  -

 

 

 달리아는 제 뺨에 축축하고도 포근한 온기가 닿는 것을 느꼈다. 굉장히 오래 잠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만히 눈을 떴다. 저 멀리 해가 지고 있었고, 브리택이 자신을 감싼 채 커다란 바위의 그늘에서 제 뺨을 핥고 있었다.

 

 “…브리택?”

 

 그는 아직 늑대개의 모습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아, 깼어?”

 

 달리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영혼을 휘감았다.

 

 “…괜찮은거죠?”

 

 그녀의 작은 몸이 튕기듯이 일어났고, 브리택의 몸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살폈다. 다행히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브리택은 피곤한 듯이 달리아의 무릎에 제 머리를 뉘였다.

 

 이윽고 해가 완전히 졌다. 달리아는 그의 머리칼이 보드랍다는 것을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달리아, 나…무릎 잠시만 빌려도 돼?”

 

 저 멀리 이미 실비아 영지의 빛이 보였다. 아무래도 잘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껏요.”

 

 달리아는 가만히 그의 뺨을 매만지고, 그 입술을 매만져주었다. 바싹 마른 입술이었다. 얼마나 그가 힘들었을지 알 것 같았다. 비록 보지 못했어도.

 

 ‘아마도…할 수 있는 모든 걸 했겠지.’

 

 달리아의 손가락이 브리택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는 잠들지는 않았지만, 달리아의 무릎을 베고 누워선 숨을 차분하게 골랐다.

 

 “달리아.”

 “나 불렀어요?”

 

 브리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이 달리아의 얼굴을 바로 올려다보았다. 브리택은 손을 위로 뻗어선, 달리아의 입술을 가만히 매만졌다.

 

 “키스해줘.”

 

 달리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차마 싫다고, 안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기 싫지 않았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로는 그가 의식을 잃어버린 자신을 이곳까지 무사히 데려오는데 얼마나 큰 노고를 치렀을지 짐작이 되기 때문이었다.

 

 “…알았어요.”

 

 달리아는 눈을 질끈 감고 가만히 몸을 숙였다. 그리고…달리아의 작은 입술은 방향을 조금 빗나가서, 그의 코에 가 닿았다.

 

 “달리아?”

 “…으.”

 

 브리택은 그녀의 무릎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바위를 짚곤 놀라 파르르 떠는 달리아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싫지 않아.’

 

 좋다고, 설렌다고 생각하기에는 차마 낯부끄러워선 그런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다. 물론 스스로 인정하고 있긴 했지만. 이윽고 그가 입술을 뗐다.

 

 “…어떤 기분이에요?”

 

 달리아가 괜히 딴곳을 바라보며 묻자, 브리택이 되물었다.

 

 “뭐가?”

 “그…나랑 입맞출때요.”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또 낯부끄러운 말들을 잔뜩 쏟아내려는 게 분명했다. 달리아는 그걸 또 듣는 것보다는 차라리 입을 한 번 더 맞추는게 낫다고 생각했고,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브리택이 얼어붙었다. 그가 다시 녹아 달리아의 몸을 끌어안기까지는 적어도 눈을 일곱 번은 깜빡일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했다.

 

 달리아가 입술을 떼고 그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날…지켜줘서 고마워요.”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달리아의 몸이 다시 움츠러들었다.

 

 ‘아, 오글거려….’

 

 움츠린 채로 그의 품에 안겨들어갔다. 따스했다. 그의 팔과 몸에는 왠지 평소보다 힘이 풀려 있었다. 살짝 말랑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마도 자신이 잠들었던 몇 시간 동안 저를 지킨답시고 기력을 소모했을 게 뻔했다.

 

 “…브리택. 많이 힘들었어요?”

 “갑자기 왜?”

 

 달리아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평소보다 안아주는 팔힘이 약해진 것 같아서…?”

 

 달리아가 그 말을 하자마자 브리택은 그녀를 세게 껴안았고, 달리아는 결국 컥컥거리며 브리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 사, 사람 살려….”

 “뭐가 약해져?”

 “아무것도 아니에요….”

 

 먼저 웃음을 터트린건 오히려 달리아였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그의 행동이 귀엽고 재미있었다. 브리택도 가만히 달리아가 웃는 모습을 보다 따라 웃었다.

 

 저 멀리 화이트우드 주교가 지키고 있는 실비아 영지의 빛이 밤하늘 높이 뻗고 있었다. 새하얀 결계는 마치 하늘을 지탱하는 더없이 가느다란 기둥처럼 보였다.

 

 “다행히…살아있네요.”

 

 브리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택은 다시 늑대개의 모습으로 변해서,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달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위에 올라탔다.

 

 “조금 쉬다 가려고 했던 거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널 황무지에 눕혀놓고 쉬게 하겠어.”

 

 달리아는 킥킥 웃으며 그의 털이 보드라운 뒷목을 살살 긁어주었다. 그는 천천히 출발했고, 달리아는 은촛대지팡이를 가만히 들고 주변을 비추었다.

 

 “근데 달리아.”

 “네?”

 “그 악귀 말인데…어떻게 결계를 친 걸까?”

 

 달리아는 잠시 고민했고, 곧 답을 찾아냈다.

 

 “결계가 아니었을거에요. 아마 바깥의 악령들도 그저 눈속임이었을거고, 그 결계도 진짜 결계가 아니라 눈속임이었겠죠. 제가 사제였다면 그게 가짜 결계라는 걸 알았을텐데, 저는 묘지기라서….”

 “묘지기라면 모르는거야?”

 

 달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제들은 가짜 기적을 알아볼 수 있지요. 묘지기들도 가짜 주문을 알아볼 수 있어요. 하지만 사제들은 주문에 대한 감각이 없고, 묘지기들도 기적에 대한 감각이 없어요. 그게 문제에요.”

 

 브리택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저 멀리 실비아 영지의 빛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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