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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묘지기 아가씨 달리아
작가 : WATERS
작품등록일 : 2020.9.26

#능력녀 #감동물 #묘지기 #악령퇴치 #악마퇴치 #헌신남 #다정남


죽음의 신은 외눈을 잃었고, 왕국은 삼백 년 전부터 망자들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해 기어다니는 황야가 되어버렸다. 머스그레이브 일가의 묘지기인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인간을 배신하고 악령의 편에 붙은 자신의 아버지를 처단하러 황야를 건너 왕도로 향한다.

표지 일러스트 : Waifu Labs
추신 : 좌하단의 붉은 로고는 Waifu Labs의 로고입니다. 인공지능 기반의 캐릭터 포트레이트 작성 사이트로, 출판사가 아닙니다...

 
서약 (3)
작성일 : 20-09-26 19:49     조회 : 292     추천 : 1     분량 : 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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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브리택은 무언가 따스한 온기가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가 그 푸른 눈을 서서히 떴다. 눈앞에 한없이 그리워하던 황금색 머리카락이 가득했다.

 

 “…넌….”

 “쉿. 고마워요.”

 

 달리아의 자그맣고 하얀 손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브리택이 그 시퍼런 눈동자를 다시 느긋하게 감았다.

 

 “나에게…모든 걸 말해줄 수 있어요?”

 

 그녀는 무언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브리택은 갈등했다. 그가 숨긴 모든 비밀은 너무나도 날카로워서 그녀의 마음을 산산조각낼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방금 갈은 날카로운 장검처럼 달리아의 가슴을 후벼낼 것이다.

 

 브리택은 그녀가 흘릴 눈물과 피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조금만…조금만….”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달리아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무언가 사연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눈물을 흘리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소매로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기다려줄까요?”

 

 그가 그 큰 머리를 끄덕였다. 달리아는 그의 머리를 마주 안은 채로 함께 고개를 끄덕여줬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달리아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열다섯 이전이 굉장히 희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나이는 정확히 만 열아홉.

 

 ‘내가…잃어버린 기억 속의 인연이었을까.’

 

 ‘그 날’이었다. 그녀의 오라버니인 에드워드 머스그레이브가 힘을 잃은 날. 그리고 그 날 자정,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생애 처음으로 은촛대지팡이에 불꽃을 피워올렸다.

 

 열 다섯의 기쁘던 그 날 이전의 기억은 왠지 모르겠지만 군데군데 구멍이 심하게 뚫려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이 묘지기로서의 숙명이라고 하셨었다. 이전의 기억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영혼의 영속적인 평온에 힘쓰는 것.

 

 달리아가 그의 목을 좀 더 세게 껴안았다. 만약 그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 속 인연이라면 얼마나,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지만 그가 정확히 누구였고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았다. 막연히, 막연히 자신이 키우던 늑대개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물론 그야 자신이 늑대개라는 걸 끊임없이 부정하고는 있지만.

 

 “브리택.”

 “왜?”

 

 그가 눈을 뜨곤 달리아를 쳐다보았다. 그는 일어나면 그 눈빛이 달리아와 마주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혹시…성은 뭐에요?”

 

 사람이라면 성이 있을 것이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곤. 브리택은 고개를 내저었다.

 

 “성은…없다.”

 “…이 스호노든 지방 일대의 호적을 전부 뒤져보려고 했는데. 소용이 없겠네요.”

 

 그가 피식 웃어버렸다. 그게 얼마나 지난하고도 지루하며 긴 작업인지 달리아가 모르진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주지 않아도 돼.”

 “하지만….”

 

 브리택이 그 길고 보드라운 주둥이로 달리아의 뺨을 툭 밀었다. 그의 유난히 긴 꼬리가 보드랍게 달리아의 허리를 감쌌다. 그의 꼬리털은 마치 흘러가는 새털구름처럼 길고 부드러웠다.

 

 “내가…되찾아줄게. 네 기억.”

 

 달리아가 눈을 크게 깜빡였다. 도대체 내가 그에게 어떤 존재였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서도 희미하게, 희미하게 옛 감정의 잊혀진 정취가 배어나왔다.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 아련함. 그리움. 시간을 한없이 뛰어넘어 다시 만나게 된 것만 같은…기분이었다.

 

 “…좋아요.”

 “…문 곳은 안 다쳤어?”

 

 그가 그 커다란 혀로 달리아의 작은 손등을 가볍게 핥았다. 상처는 커녕 자국도 남아있지 않았다.

 

 “괜찮아요.”

 “…다행이다.”

 

 그의 커다란 주둥이가 그녀의 턱 밑으로 파고들었다. 달리아는 가만히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보드라운 털가죽이었다. 그녀의 주먹만한 시퍼런 눈이 가만히 자신을 꿰뚫어보았다. 달리아는 빙긋 웃어주었다.

 

 “…오랜만이야, 달리아.”

 

 달리아는 대답해 줄 수 없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그저 그리움과, 아직 남아 감도는 감정과, 몸에 익은 손길들만이 저 깊은 영혼의 밑바닥에 고여 있을 뿐이었다.

 

 “…난 잘 모르겠지만…어서와요, 브리택.”

 

 그의 기쁨이 먹먹하게 전해졌다. 그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

 

 

 묘지기견은 묘지기와 묘지를 지킨다. 둘 중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을지는 전적으로 묘지기견의 의사였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명확했다.

 

 달리아는 머스그레이브 일가에서 태어난 그 어떤 묘지기보다도 강력했다. 열 다섯의 그 날 이전에도 묘지의 영혼들을 달래어 다시 평온한 흙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을 어렵지 않게 해냈다고 들었다.

 

 이것은 묘지기로서의 신비롭고 거룩한 힘을 행사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그녀의 영혼과 마음에 감화된 것이었다.

 

 “브리택, 준비됐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아는 먼저 침실의 문을 열고 나섰다.

 

 ‘지하실로 가야 해.’

 

 머스그레이브 저택의 모든 주문이 휘감겨 고여 있는 곳. 외침을 막고 묘지기의 힘을 돋우며 잠든 이들을 더 깊게 잠드는 힘의 핵심. 달리아와 브리택은 천천히 지하계단을 내려갔다.

 

 어둠이 그들을 휘감고, 브리택은 점점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미처 그것을 보지 못한 달리아를 뒤에서 껴안았다.

 

 “흐, 윽, 깜짝이야.”

 

 달리아는 제 허리를 휘감아 끌어안는 단단한 팔의 감촉에 놀라 떨었다.

 

 “많이 놀랐어?”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는 브리택이 맞았다. 그제서야 달리아는 마음을 놓았다. 아니 사실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됐다. 그는 고작해야 오늘 아침에 만난 남자고, 어젯밤엔 제 침실까지 들어왔는걸. 하지만 마음은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많이 놀랐잖아요.”

 “가자.”

 

 달리아가 제 허리를 감은 그의 팔을 어루만지며 대꾸했다.

 

 “근데 이러면…제가 걷기 불편하단 말이에요.”

 “그럼 손 잡자.”

 

 달리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남자는 도대체가….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일단 놓아줘요.”

 

 그는 놓아주는 것도 그냥 놓아주지 않았다. 달리아의 뒷목에, 그 갓 녹인 황금처럼 찬란한 머리칼 너머로 입을 맞추었다. 그제서야 놓아주었다.

 

 “무, 무, 무슨….”

 “왜?”

 

 그 뻔뻔스러움에 달리아는 말문이 막혔다. 다른 사람이 이랬다면 바로 뺨을 날리곤 정강이를 걷어찼을텐데, 방금 느낀 것은 불쾌함이 아닌 설렘이었다.

 

 가슴 한 곳이 저릿하게 아파오기까지 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었던 것처럼. 아니, 자신이 무언가 잘못해서 잃은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손 잡아요.”

 

 달리아가 손을 내밀자, 그가 덥석 잡아선 깍지를 끼었다. 그녀의 작고 가냘픈 손가락 사이사이로 그의 억센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달리아는 무언가 목구멍으로 울컥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둠 속이라서 참 다행이었다. 저택의 지하로 내려가는 그 빙글빙글 도는 계단에서, 달리아는 한 발을 더 밑으로 내딛어 갈 때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 뭐, 뭐지…? 왜지…?’

 

 왼손을 가운데의 기둥에 대고 빛이 없는 지하계단을 다 내려갔을 무렵, 브리택은 지하 통로의 횃불에 반짝이는 달리아의 눈물을 보았다. 뺨을 타고 한껏 흘러내리고 있었다.

 

 “…달리아?”

 “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달리아는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울음이 왈칵 터져나왔다. 브리택이 자신을 안아주자 더 걷잡을 수 없이 흘러넘쳤다.

 

 “왜, 왜, 갑자기, 무슨, 흐윽, 왜….”

 “…괜찮아. 괜찮아….”

 

 브리택은 제 셔츠 자락을 붙잡곤 얼굴을 파묻어 울먹이는 달리아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 작은 몸이 안기어선 끝없이 울음에 흔들렸다. 달리아가 진정한 건 10여 분은 지난 후였다.

 

 “이제 좀 진정됐어?”

 “…당신은, 대체, 나한테 누구였죠…?”

 

 그가 자신의 뺨을 그러쥐고 엄지손가락으로 눈물을 지워주었다. 달리아는 가만히 그의 손길에 제 얼굴을 내준 채로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 대신 오는 것은 그의 입술이었고, 달리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벼운 입맞춤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아직…아직이야.”

 “제가, 제가 다칠 수 있는 비밀인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전부 말씀해주실 건가요?”

 

 그가 달리아를 껴안았다. 달리아도 가만히 그의 등을 감싸안았다. 무언가 확실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제 마음 속에 깊게 박혀 있었고, 사라진 기억과 함께 어디론가 뽑혀 사라져선 묘지에 깊게 묻혀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 안에 그 날카롭게 박힌 자국은 여전히 남아서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 아물지 않은 자국만큼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때가 되면…전부 말해줄게.”

 

 둘은 조금을 더 걸어서 새까만 흑단으로 짜여진 커다란 문 앞에 섰다. 달리아는 챙겨온 은촛대지팡이로 그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안에서 수십 개의 목소리가 겹쳐진 음성이 울려퍼졌다.

 

 — 거룩한 머스그레이브 일가의 무거운 짐을 진 여든 한 번째 묘지기, 달리아 머스그레이브여. 일흔 아홉의 영혼이 힘겨운 짐을 내려놓고 모인 이곳에 당도한 까닭은 무엇인가.

 

 달리아의 왼손이 그의 손을 좀 더 꼭 움켜잡았다. 그녀는 오른손에 쥔 은촛대지팡이의 끝으로 바닥을 두 번 두드리고 대답했다.

 

 “거룩한 머스그레이브 일가의 무거운 짐을 진 여든 한 번째 묘지기,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그 짐을 나누어줄 믿음 있는 의무의 동반자를 찾았기에 이곳에 당도했습니다.”

 

 검은 문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열렸다. 안에서 기괴한 분위기의 바람이 몰아쳤다. 브리택이 그녀를 안아 보호했고, 이윽고 그녀가 든 은촛대지팡이의 불꽃이 흔들리는 것을 멈추었다.

 

 — 우리는 짐을 내려놓고 나서도 자처하여 묘지를 보호하는 영혼, 머스그레이브 일가의 묘지기들. 우리들의 후손이 새로운 의무의 동반자를 찾아낸 것을 기꺼이 축복하노라.

 

 커다란 공동 안의 바닥에는 수없이 많은 원과 도형이 그러져 있었다. 그 테두리에 새겨진 문자는 브리택으로선 해석할 수 없었다. 한가운데에는 황금으로 만든 촛대가 있었고, 세 개의 밀랍초가 꽂혀 불빛을 내고 있었다.

 

 — 우리는 은촛대에 불꽃을 전하는 금촛대. 금촛대에 깃든 선대의 영혼. 영혼으로 남은 전대의 묘지기. 묘지기이기를 죽어서도 자처한 삶과 죽음의 의무자.

 

 달리아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브리택은 공동의 천장을 휘몰아다니는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희뿌연 구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달리아의 곁을 따라갔다.

 

 “나는 금촛대에게 불꽃을 넘겨받은 은촛대. 은촛대로 이어가는 선대의 의무. 의무를 지키는 이 시대의 묘지기. 묘지기이기를 죽어서도 자처할 삶과 죽음의 의무자.”

 

 휘몰아치던 영혼의 격류가 단 순간에 멈추었다. 그제서야 브리택은 하나 하나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의 영혼은 찬란했다. 그저 희뿌옇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 하나 하나가 그 안에 찬란한 밤하늘을 품고 있었다.

 

 — 그대는 은촛대의 불꽃을 지킬 방패. 방패를 자처할 묘지기의 보호자. 보호자로서 기꺼이 짊어질 의무를 죽음의 고배 이후인 지금에도 자처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브리택이 고요한 가운데 입을 열었다.

 

 “…나의 이름은 브리택. 그 의무를, 죽음 이후인 지금에도 자처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 그렇다면 금촛대를 들어올려라. 불이 꺼진 은촛대에 다시금 불을 밝혀라. 머스그레이브의 이름을 내건 우리 모든 죽음 이후의 영혼들은 그대를 새 묘지기와 함께할 의무의 동반자로서 인정하나니, 그대는 달리아 머스그레이브가 죽은 이후에도 이 공동에 그녀와 함께 들어와 영훤히 머스그레이브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이행해야 할 것이다.

 

 달리아의 청회색 눈동자가 브리택을 올려다보았다. 이것은 영혼에 얽히는 서약, 서약 이후에는 죽음 이후의 환생조차 포기해야 했다. 달리아는 그가 지금이라도 성불해 환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브리택, 묘지기는 죽어서도 묘지기에요. 그리고 묘지기견도…마찬가지에요. 당신의 영혼이 나와 함께 영원히, 세상이 종말할 때까지 이곳에 묶여도 괜찮겠어요?”

 

 브리택은 금촛대를 들어올렸다. 금촛대의 붉은 불꽃이 그의 손에 닿자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달리아가 들고 있는 은촛대지팡이의 샛노란 불꽃을 손가락으로 비벼 껐다. 그녀의 턱을 살짝 잡아 올려선, 입술을 맞추었다. 한없이 보드라웠다.

 

 “바라는 바야.”

 

 그의 뺨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달리아의 뺨에도 마찬가지였다. 브리택은 들어올린 금촛대의 보라색 불꽃을 옮겨 붙였다. 달리아가 지팡이를 잡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보라색과 노란색 불꽃이 아름답게 섞이고, 이윽고 새하얀 불꽃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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