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미래는 현재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다른 것이 있었다.
사람들은 기계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고 일률적인 시스템에 안주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준이 일하는 정보회사는 광범위한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고
가장 빠른 정보통이었다.
가까운 곳에는 인간의 게놈 연구센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인재들이 모여있는 과학 정보 단지라고 할 수 있었다.
저녁이 되어 퇴근하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무언가를 피해 달아나다 준을 보자 살려달라며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지?
남자의 뒤를 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뭐땜에 그러세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점차 모습이 허물어져 갔다.
말 그대로 점점 녹아서 사라지고 있었다.
산성 용액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것 봐요!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준은 다급히 119에 전화를 걸었다.
남자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구급요원이 수습하는 동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웅성거리며 뭉개진 남자를
보며 혀를 내 둘렀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사람이 이렇게 녹아버린 건 머리털 나곤 처음 보네!”
사람들은 119가 돌아가고 나서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준이 거의 집에 도착하니 진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
서로의 집이 가까워서 자주 있는 일이었다.
“뭐하러 매일 나와 있어! 위험하게!”
“걱정도 팔자네! 다 큰 어른을 누가 잡아가기라도 할까 봐?”
아까 보았던 남자의 죽음이 게놈 연구소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추측을해 보지만 그런 정도의 사고가 있었다면 당장에 방송에서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사건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
“내일 오랜만에 자주갔던 마로니에 에서 만나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으응! 그럼!”
“왜 대답이 그래?”
“그래 알았어!”
다음으로 미루자고 말하려다 차마 하지 못했다. 일이 바빠 매일 미루던 약속이었다.
회사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시내로 나와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을이라 그런지 가로수 잎들이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을씨년 스런 날씨에 준이 코트의 깃을 올렸다.
사람들이 도로 한복판으로 나와서 웅성거리며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는 건지 준도 위를 올려다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금방 있었는데 못 봤어요?”
“글쎄 말이야!”
여러 명이 목격했다는 유에프오라도 있었나?
준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요즘에도 그런 걸 믿는 사람이 있다니 재미있었다.
가끔 유에프오가 나타났다는 목격자들이 나와 방송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음모론을 내세우며 이것저것 증거를 내세우던 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요즘 들어 이상한 일들이 맞물리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마로니에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외국풍의 분위기가 나는 이곳을 진이와 자주 오곤 했었다.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도록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휴대폰의 소리는 울리는데 받지를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은 아니겠지?”
자신을 위로하며 곧 나타날 것 같은 진이를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괜스리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결혼을 약속하며 아이를 몇 명 날까 애기한 적이 있었다.
“아이가 없으면 어때! 우리 둘이 있으면 되지!”
“그만! 그런 소리 듣기 싫어! 난 아이가 있어야 한다구 했잖아!”
“그럼! 크리닉에 예약해!”
“지금 장난해? 웬 크리닉! 준이씨 문제 있는거 아냐?”
"하하하! 장난이야! 난 신체 건강한 남자라구!"
어쩌면 혼자 훌쩍 바람이라도 쐬러 간 걸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오겠지!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되었다.
실종신고를 했다.
이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어봤지만, 허사였다
진이의 흔적은 어디에고 없었다.
준이 사는 아파트에서도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이 생겼다.
무작위로 일어나는 일은 점점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준의 직장 동료들도 사라지고 있었고 남은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직장 상사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준 자신도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사장이 사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사라진 동료들 걱정은 하지 말고 남은 사람들은 일에 열중해 주십시오!
그들이 곧 돌아오리라 굳게 믿습니다.”
연줄이 있던 누군가가 언질을 준거라 말들을 하며 한편 불안해했다.
준은 직장도 접어두고 진이를 찾아 나섰다.
같이 다니던 거리를 걸었다.
자동차 하나가 미끄러지듯이 준의 곁으로 다가왔다. 폴리스였다.
파란색으로 쓰인 POLICE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늦은 시간인데 어디를 가십니까?”
“네?”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민주주의에서 통금시간이 없어진 지 오래 이건만 이건 무슨 뜬금없는
소린지.
“방금전에 통금시간이 발표 된 거 모르고 계셨습니까?”
“.......”
준은 금시초문이었다.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건지 어리둥절했다.
“제가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어서 지금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겁니까?”
남자가 명령조의 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경찰차에 억지로 태워져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앞 좌석에서 준을 돌아보며
“우리는 시민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임무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불만스런 표현이라도 했나 싶어
“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답은 없었다.
어색한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표정 없는 그자들이 한참을 기다리며 떠나지 않았다.
친절이라고 보기에는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 처박힌 채 꼼짝하지 않았다.
아침에 해가 들기 시작해서 저녁이 되어 어두워 질 때까지 준은 그냥 멈춘 채였다.
컴퓨터 화면에 띄운 실종자를 찾는 사이트가 그대로 있었다.
밖에 나가지 않은 지 며 칠이 지났다.
문을 열자 그동안 쌓인 신문들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 앞에 소리 없이 서 있는 남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저랑 얘기 좀 할 수 있습니까?”
이제 기억이 났다. 그는 같은 층에 살고 있는 이웃이었다.
“들어오시죠! 저도 심심하던 차였습니다”
“모두 사라졌어요! 저만 남았다구요. 이거 무슨 영화 같은 건 아니겠죠?”
“저 역시 혼자 있습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물 한잔을 들이키고 또 기다란 침묵이 흘렀다.
“제가 얼마 전에 길을 가다 하늘에 떠 있는 유에프오를 봤는데!
아무도 안 믿더라구요! 보아하니 내 말을 믿지 않는것 같은데
정말이라니까요!”
또 침묵이 지나갔다.
“그게 말이에요 제 생각에는 그놈들이 우리 식구들을 잡아간 게 확실해요!
아 글쎄 어둔 밤인데도 그 놈들 몸에서 기다란 게 나오더니 기절을 시키더라구요!
난 가만 놔두고 모두 끌고 가다가 다시 돌아와 나한테 뭘 한 건지 이틀이나 지나
정신이 들지 뭡니까!”
남자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 준은
“그게 언제쯤입니까?”
“아마도 보름쯤 전 일이었지요!”
그럼 진이와 만나기로 약속한 바로 그 날이었다.
“저도 그날 거기 있었습니다”
“형씨도 봤단 말입니까?”
“아니, 보진 못했습니다”
자신의 말이 사실 이란 건 증명할 줄 알았던 남자는 금세 시들어버렸다.
그가 준의 집에서 기거를 시작한 뒤로 둘은 같이 거리를 쏘다녔다.
실종의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머리는 빗질도 하지 않고 입던 츄리닝차림으로 돌아다녔다
그들을 아는 이웃들이 혀를 끌끌 차곤 했다.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이 크면 저러고 다니누!”
“어떤 놈들인지 어서 잡혔으면 좋으련만…”
실종자가 없는 사람들이 가끔 나와 이들과 마주치면 반찬을 건네주거나
먹을거리를 챙겨 주었다.
둘이 식탁에 앉아 정신없이 먹다가 눈이 마주치면 웃음 반 실소 반 이었다.
그 꼴이라니!
아무런 수확이 없자 남자가 목격했다는 유에프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목격한 장소에서 반경 5킬로 내에 있는 산과 계곡들을 지도에 표시해가며
찾아 보기로 했다.
아주 사소하지만,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살펴봤다.
험하기로 유명한 곳을 뒤지다가 드디어 발견했다.
둥글고 넓게 자국이 나 있는 장소가 나타났다.
“이게 그걸까?”
“아님 뭐겠어! 이렇게 넓게 패인 곳이 어디 있겠어! 확실해!”
“이 근방에 정전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면 좋은데…”
“그것도 일종의 현상이지!”
“그럼 그 많은 사람은 어디로 갔단 말이야?”
“아마도 모선이 어딘가 있을 거야!”
인기척이 났다. 산중에 인기척이라니! 불쑥 한 사람이 나타났다.
남자는 단단히 무장을 하고 있었다. 만일에 대비한 차림이었다.
손에는 사냥용 총까지 들고 있었다.
“누구야!”
“여기가 어딘지 알고나 왔습니까?”
“그러는 당신은 누구요?”
“나는 지나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냥 산책 삼아 지나던 중입니다”
“하하하! 아니 이렇게 험한 산에 산책이라니 정말 수상한 양반들이군!”
날이 어두워 지고 있었다.
“이곳은 일찍 어둠이 내리는 곳이니 서둘러야 할 겁니다. 내가 앞장 서지요!”
의심 없이 남자를 따라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쉬어가는 정자가 나오는 곳이었다.
거기도 이제 빛이 들지 않아 음침해 보였다.
남자가 갑자기 총을 겨누었다.
“당신들 여기 온 이유가 뭐야! 얼마 전 사람들이 이곳까지 왔다가 사라진 거
당신들 짓이지?”
“환장하겠구만! 이것 보쇼 우리도 사람 찾으러 다니는 중이란 말이오!”
“아니! 사람 찾아 다니는 사람이 왜 이리 많아!”
짙은 어둠이 내린 정자의 주변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를 가르는 빛이 있었다.
조명탄을 쏜 것처럼 주변이 밝아졌다.
상공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어어! 저거 뭐야! “
준과 이웃 남자 혁이 아무 말 없이 상공을 주시했다.
이제서야 정체를 드러낸 것은 모선이 분명했다.
“죽여버리고 말겠어!”
그가 허공을 향해서 돌을 집어 던졌다. 닿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산 사나이는 넋이 나가 있었다.
상대는 너무 크고 빠르며 신출귀몰했다. 이제는 그냥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준이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돌아와 인터넷을 켜자 그동안 보지 못한 소식들이 있었다.
모두 비행물체를 보았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그 아래 달린 댓글들이 있었다.
-난 어제 커다란 비행선을 보았다.
-나도 보았는데 님도?
-모선 같아 보여 놀랬슴!
-헐 대박! 그럼 이제 우주전쟁 터지는 거임?
우주전쟁은 고사하고 정체라도 드러냈으면 속이라도 시원 할 텐데 싶었다.
하루가 고단했지만, 수확은 있었다.
진이가 어쩌면 저 상공 어딘가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지구를 은하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쓰레기 별이라 외계행성이 이곳을 죽은 행성이라 부른다고도 했다.
아무렴 어떠랴!
이곳에서 바퀴벌레보다 더 생명력이 강한 인간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진이는 살아있을 것이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
꼭 그래야만 한다 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