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으음…….”
여기가 맞는 걸까. 잠시 깊은 고민에 잠겼다.
새내기 아이들의 호의에 힘입어 쿠폰은 물론이고 포장 비닐이며 치킨 무 포장지까지 받아왔는데 연락처가 다 달랐다. 아이들 말로는 어느 쪽으로 전화를 하든 같은 사장님이 받는단다.
“네 딩동치킨입니다-”
반신반의하며 전화를 하니 정말로 딩동치킨 사장님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친절한 안내를 따라 주소지를 따라오긴 했는데 음…….
“치킨집이자 중국집이군.”
“그러게 말이야…”
간판에 쓰여 있는 대표번호만 다섯 개였다. 사장님께서 어떤 경영철학을 갖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고객 입장에선 음식에 대한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져 보였다. 그래도 간판에 붙은 상호에 딩동치킨이 들어가긴 하니까… 바로 옆에 자금성이라는 상호가 사이좋게 붙어 있긴 했지만. 일단 들어가 보기나 할까.
그동안 곁에서 입간판의 메뉴를 살피고 있던 한소을이 나의 결심을 지지해 주었다.
“맛있어 보이는데.”
“너 채식주의자라며.”
“응.”
“여기 치킨집이랑 중국집이야. 치킨 피해서 중국요리를 먹더라도 대부분 돼지고기가 들어갈 텐데……. 여기서 네가 먹을 수 있는 건 오므라이스 정도밖에 없어. 그리고 이렇게 두 업종의 메뉴가 혼재된 식당이면 맛의 전문성이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래. 들어가 보자.”
내 말을 듣고 있긴 한 건지 만 건지 한소을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이놈은 지금 사람을 찾는 것보다는 단지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뿐인 게 분명했다.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푹 쉬고는 한소을의 뒤를 따랐다.
“딩-동-”
문을 열기 무섭게 거창한 소리가 매장 안에 울려 퍼졌다. 입장하는 건 겨우 둘 뿐인데 환대가 너무 격렬한 탓에, 우리가 단체 손님이 아닌 것이 미안했다.
“실례합니다…….”
가게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가게 내부는 나름 요즘 유행한다는 레트로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러나 기름때가 깊이 밴 벽지를 보니 인테리어라기보단 그냥 오랜 세월의 흔적인 듯했다. 손님까지 하나 없으니 마치 과거에 시간이 멈춘 가게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에 불시착한 것만 같았다.
이 가게의 놀라운 점은 손님뿐만 아니라 매장을 지키는 주인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텅 비어있는 가게 안을 서성이다가, 문득 가게 안쪽에 놓인 쪽방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걸 발견했다. 정확히는 전화벨 소리였다.
“네, 딩동치킨입니다-”
앗. 이 목소리. 아까 통화했던 치킨집 사장님이다. 역시 매장에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잠깐 방에 들어가 계신 거였구나.
반색하며 쪽방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등 뒤에서 또다시 딩-동-하는 웅장한 소리가 매장 안을 울렸다.
“어...?”
아까 한강 유원지에서 보았던 청년이었다. 이번엔 치킨 봉지가 아닌 철가방을 들고 있었지만. 게다가 청년은 오히려 매장 안에 손님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 더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어째서 가게 주인이 손님을 어려워하는 건데.
“식사… 식사하러 오신 거 맞죠? 며, 몇 분이세요?”
“두 명이다.”
청년과 나 모두 서로의 존재에 당황하는 중에 오로지 한소을만 침착했다. 당황한 청년은 이 가게의 유일한 손님인 두 사람을 앞에 두고서 몇 분이냐 묻는 어이없는 실수를 했는데도, 한소을은 전혀 황당해하는 기색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의 배려 아닌 배려 덕분에 청년은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일단 편한 데 앉으시고요……. 메뉴판 갖다 드릴게요. 보시고 주문해 주시면 한 20분… 뒤에 나와요.”
“아, 메뉴는 지금 말씀드릴게요. 오므라이스 두 개 주세요.”
“오, 오므라이스요? 여긴 치킨이 유명한데.”
“둘 다 고기를 못 먹어서요.”
“아… 그러시구나.”
청년의 얼굴에 ‘고기를 못 먹으면서 치킨집엔 왜 왔을까?’라는 의구심이 선명했다. 그러나 어쨌든 들어온 주문을 처리해야 하므로, 청년은 서둘러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야 정세현! 주문 밀렸는데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녀!”
매장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우렁찬 성량이었다.
“방금 막 배달 끝내고 오는 길이에요!”
“너 또 어디서 노닥거리다가 온 거 아니야? 노래방 갔지!”
“아니에요!”
이에 대답하는 청년의 목소리도 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장님과 청년은 서로 부자관계인 모양이었다. 저 성량은 유전인가 보네…….
그렇게 한판 입씨름을 끝낸 부자는 잠시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청년이 주방에 들어가 오므라이스 요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는 중에도 주문 전화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쩌렁쩌렁한 통화 목소리는 매장까지 들렸다.
“오므라이스 두 개 나왔습니다.”
다행히 요리는 금방 나왔다. 음식 맛도 기대치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우리는 가게를 찾은 용건이 식사가 아니라 청년을 만나는 것이었는데, 정작 청년이 너무 바빠 도통 대화할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맛이 좋군.”
한소을은 청년보단 식사가 용건인 듯했지만.
그렇게 청년이 배달을 하러 가느라 수시로 가게를 들락거리는 걸 보며 식사를 할 때였다.
“저기…….”
또 한 건의 배달을 겨우 마치고 숨 돌리러 매장에 돌아온 청년이 우리에게 쭈뼛쭈뼛 다가왔다. 오, 드디어 대화할 시간이 생긴 건가. 눈을 빛내며 무슨 얘기부터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내게 청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지금 또 배달을 나가봐야 해서요. 다 드시면 그냥 테이블 위에 돈만 올려주고 가시면 돼요.”
“아… 이따 오시는 거 기다렸다가 계산할게요.”
“지금 한강 피크 시간이라 한참 걸릴 것 같아서요.”
청년이 양손에 한가득 들고 있는 치킨 봉지를 들어 보였다. 과연, 저걸 다 돌리고 오려면 한참 걸리겠군.
어쩌지? 하고 한소을을 보았다가 다시 청년에게로 고갤 돌렸다. 청년의 아버님이라도 설득해 볼까.
“그럼 계산은 사장님께 직접 할게요. 사장님 방에 계시죠?”
“계시기는 하는데…….”
청년의 표정에 난감함이 물들었다. 그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깰 으쓱했다.
“예, 그러세요.”
“고마워요. 아까 사장님께서 선생님 성함을 ‘정세현’이라고 부르시던데, 혹시 세현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 네, 뭐…”
슬슬 청년, 아니 정세현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돌았다. 주문이 많이 밀려 빨리 가봐야 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용건만 간단히 전하기로 했다.
“세현 씨, 저는 이제부터 사장님, 아니, 아버님을 설득하러 갈 거예요. 아버님 허락이 떨어지거든 세현 씨 쉬는 날, 아니 언제든 이곳으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언젠가 홍소희에게 받은 바 있는 명함을 정세현에게 건넸다. 명함에 적힌 글귀를 읽던 그의 입이 이내 떡 벌어졌다.
“소라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홍수연...? 대표님이세요?!”
“제가 대표는 아니고요, 저는 헤드헌터 같은 거예요.”
깜짝 놀란 그에게 손사래를 치며 해명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정세현은 조금 진정했다. 그러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명함을 가만히 쓸어보며 중얼거렸다.
“저희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으실 거예요. 설득이 안 되는 분이시라…….”
정세현이 아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아까 유원지에서 들었던 웃음과 똑같은 호탕한 웃음소리였건만, 이번에는 왠지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아이쿠, 시간이 늦었네. 저는 아무튼 갈게요!”
치킨 봉지를 추스른 정세현이 황급히 몸을 돌이켰다. 이런 분위기가 싫어서 도망치듯 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그의 뒤에 대고 급히 말을 전했다.
“세현 씨! 아까 유원지에서 불렀던 노래… 좋았어요.”
내 말에 우뚝 걸음을 멈춘 정세현이 잠시간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가에 차마 훔쳐내지 못한 눈물이 한줄기 흘러 있었다. 어쩌면 아까 들었던 노래의 사무치는 감정은 그가 처한 열악한 환경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빈곤과 고난이 예술가를 성장시키는 필수조건이라는 속설을 무척 싫어하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정세현은 또다시 배달을 하러 훌쩍 떠나버렸다. 남겨진 나와 한소을은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쪽방으로 향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정세현을 대신해 싸우기 위해서였다.
월요일.
오늘은 정세현네 가게가 쉬는 날이다. 물론 딩동치킨이 쉴 뿐, 자금성은 운영하는 터라 정확히는 쉬는 날이 아니다. 제기랄, 쉬려면 같이 쉴 것이지 그놈의 가게는 어떻게 된 게 하루도 제대로 쉬질 않아.
그래도 어쨌든 일주일 중 월요일이 가장 한산한 날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정세현이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다면 오늘 분명 왔을 텐데……. 하루가 다 끝나가도록 녀석은 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온종일 기다리고 있자니 문득 어제의 일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어제 쪽방에 들어가서 본 광경이 생각났다. 골방에 굴러다니는 온갖 잡동사니와 그 잡동사니의 일부처럼 누워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 코에 훅 끼치는 오물 냄새… 그는 아무래도 스스로 거동을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자리보전하고 누워 여러 대의 전화기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낼 뿐이었다.
그제야 왜 정세현 그 애 혼자 바빠 죽겠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주방과 매장과 배달 담당까지 모두 도맡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 애 아빠가 절대 허락하지 않으리란 것도, 그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식당에서 정세현이 빠져나오지 못하리란 것도. 이젠 알 것 같았다.
“결국 못 오는 건가…….”
어제 연예기획사에서 왔다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문전박대당했다. 남자가 내게 마구잡이로 물건을 집어 던지는 걸 날 가로막은 한소을이 대신 맞았다. 덕분에 녀석의 눈가에 시퍼런 멍이 들었었지만, 놀랍게도 하루가 지난 지금은 흔적도 없이 말끔해졌다.
아무튼 그렇게 쫓겨나면서도 아드님 노래 한 번만 들어보시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거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에휴, 안타깝네.”
자길 키워줄 회사를 놓친 정세현이도, 인재를 놓친 나도. 서로에 대해 안쓰러움을 느끼며 로비 너머를 바라보았다.
가뜩이나 을씨년스럽던 날씨는 이제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날씨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데에 익숙했다. 방에서 혼자 잘 놀다가도 비만 내리면 우산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게 습관이었다. 농사일을 마치고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돌아오실 외할머니를 마중 나가려고. 하지만 할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정세현은 오지 않을 성싶었다. 오늘은 비가 내려도 마중 나갈 일이 없으려나 보다.
그렇게 푸욱 한숨을 쉬며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던 때였다. 마지막 미련으로 1층 로비 너머를 바라볼 때, 사옥 입구로 접근하는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
정세현이 약간 비척대는 걸음으로 입구 근처를 서성이는 게 보였다. 황급히 사옥 밖으로 뛰쳐나갔다.
“세현아!”
나도 모르게 호칭을 제대로 부른다는 것도 잊고 그의 이름을 크게 불러버렸다. 그러나 그런 걸 신경 쓸 겨를 같은 건 나나 정세현이나 피차 없었다.
“어서 와, 어서 와. 잘 왔어.”
“하하, 오늘 장사가 늦게 끝나서 좀 늦어졌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잘 왔어. 아니, 잘 왔어요.”
“그냥 반말하셔도 돼요.”
“그럴…까?”
“하하하!”
녀석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로비 안을 울렸다. 오늘의 웃음소리는 더없이 경쾌했다.
“그래서 어떻게, 아버지 허락받은 거야?”
“네. 말 꺼내자마자 얻어맞긴 했지만요.”
그러고 보니 정세현의 눈가에 시퍼런 멍 자국이 남아있었다. 공교롭게도 한소을이 맞았던 부위와 같은 곳이로군.
“그간 일하면서 모아놓은 돈이 좀 있어서요. 그 돈으로 아버지 요양병원 보내드리고 연습생 할 동안 생활비랑 트레이닝비 충당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오늘 식당 마지막 영업하고 정리하느라고 좀 늦은 거예요.”
“잘 됐다, 정말. 한 가지 말해주자면 소라엔터는 연습생 생활비랑 트레이닝비 전액 지원이야. 아버지 치료비도 네가 그것 때문에 연습생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겠다 판단되면 치료비 일부를 지원해주실지도 몰라. 그건 내가 잘 말씀드려볼게.”
“정말요? 누나 정말 고마워요!”
“누나?”
“네, 누나!”
“어… 그, 그래. 고맙다. 그럼 올라갈까?”
먼저 홍수연에게 정세현을 인사시킨 뒤에 숙소로 안내할 생각이었다. 정세현을 만나게 되면 데리고 오라면서 홍수연이 쥐여준 출입 카드를 품에서 꺼냈다.
“우와! 누나 그게 뭐예요?”
“수연 씨, 아니 대표이사님 방 전용 출입 카드야.”
“우와, 완전 최신식 엘리베이터네요.”
카드를 단말기에 찍으니 엘리베이터가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정세현은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보인 반응을 똑같이 재현하며 나를 졸졸 따라왔다. 역시. 이런 반응이 정상이지. 정세현의 호들갑에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며 앞서나갔다.
드디어 커다란 초록색 문 앞에 도착했다. 여전히 모든 게 신기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정세현을 이끌고는 문을 열었다.
“세현이 데려왔습-”
“…….”
“야, 한소을! 너 미쳤어?!”
너무 놀라 한동안 굳어 있다가 황급히 달려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보게 된 것은, 한소을이 홍수연을 벽에 가두고는 멱살을 쥐고 있는 장면이었다. 깨진 대리석 바닥에는 산산조각이 난 새 핸드폰이 대리석 조각들과 한데 엉켜 뒹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