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는 주차난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복잡해, 차를 끌고 다니는 것보다 도보나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이 더 편리했다.
나는 혹시나 한소을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손을 꼭 맞잡고는 지하철 입구로 향했다. 난관은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녀석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딱 버티고 서서 움직일 생각을 않았던 것이다.
“이건 뭐지? 지하세계로 통하는 입구인가.”
“엄밀히 말하자면 지하로 다니는 철도 입구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마는……. 아무튼 위험한 데는 아니니까 안심하고 따라와.”
“지하세계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은 널 지켜내야 하는 내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데.”
“아니 그러니까… 봐봐. 저기 세 살 꼬마애도 잘만 내려가잖아. 넌 내가 세 살 꼬마애보다도 약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로군. 젠장.
“아무튼 내가 아까 당부했잖아. 위화감을 조성하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자연스럽게 같이 내려가주면 안 될까?”
“…그렇게 하지.”
“고맙다.”
단지 지하철 계단 하나 내려가는 걸 가지고 고마움을 느끼다니……. 새삼 자괴감이 몰려오려는 걸 애써 떨쳐냈다.
한소을을 위해 교통카드를 하나 산 뒤에 개찰구 앞에 섰다.
“자, 이렇게 찍고 나가면 돼.”
먼저 내 카드를 찍고 나가는 시범을 보여주니 한소을이 자연스레 내 행동을 따라 했다. 아이 가르치듯 하는 내 행동 탓에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다행히 녀석의 얼굴이 누가 봐도 대중교통을 처음 이용해보는 도련님 같은 모습인지라, 대중들의 얼굴에 스친 위화감은 쉽게 와해되었다.
“아, 왔다!”
계단을 거의 내려가기 무섭게 지하철이 도착했다. 우르르 쏟아지는 사람들을 뚫고 막 지하철을 타려 하는데, 뒤에서 휙 가로채 끌어내는 손길이 느껴졌다.
“...!”
순간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지르고 질질 끌려갔다.
“한소을...!”
뒤를 돌아보니 차게 굳은 얼굴로 지하철을 노려보고 있는 한소을이 보였다. 뭐라 타박하기에는 녀석의 표정이 너무나도 무시무시해서 말도 붙이기 어려웠다.
그렇게 눈앞의 열차가 자리를 떠나기까지 내 손목을 그러잡고 있던 녀석은, 열차가 떠난 뒤에야 굳게 닫힌 입을 열어 말했다.
“위험하지 않다고?”
낮게 읊조리는 음성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까 계단을 내려가기 싫다고 징징대던 어린애와 동일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슬 퍼런 얼굴이다. 까맣다 못해 파란 이채가 도는 듯한 눈빛에 압도되는 듯해, 타박하려던 말이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
“저걸 타면 다신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아니, 그러니까 지하철은…”
“도착역은 단 하나뿐이야.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돌아오는 열차도 없어.”
아니 각 호선의 출발역과 도착역은 대체로 하나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한데……. 어떻게 설명해도 들어먹을 기색이 아니었다.
“후우… 그래. 그렇다 치자. 네 말이 맞아.”
도무지 지하철을 탈 생각이 없는 녀석 때문에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하철을 탈 수 없으니 대신 버스를 타기로 했다.
“너. 버스는 괜찮은 거지?”
“버스는 괜찮다.”
정류장 앞에 서서 재차 물었다. 혹시나 모를 불미스러운 일을 막기 위해 거듭 확인을 받았다.
다행히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버스가 오착했다. 여기서는 일회용 교통카드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내 카드로 두 명 분을 찍고 탔다.
“괜찮지?”
“응.”
다행히 한소을은 극단적으로 경계심을 표출하던 지하철에 비하면 감동적일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대로 사과엔터테인먼트에 도착할 때까지 얌전히 앉아서 가기만 하면…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문제는 우리를 태운 버스가 한강 다리를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
한소을의 얼굴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마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사람처럼 낯빛이 변했다. 설마 이 자식 이 강이 삼도천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한소을. 너 괜찮은 거지?”
“내려야 한다.”
“뭐?”
“강을 다 건너기 전에 내려야 해.”
“야, 지금 다리 건너고 있는 거 안 보여? 중간에 무슨 수로 내리냐고...!”
그러나 나의 만류에도 녀석은 도통 말을 들어먹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운전기사를 겁박할 낌새인지라, 한소을을 붙잡고 늘어졌다.
“너, 여기서 안 멈추면 나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소리칠 순 없었기에 그의 귓가에 가만히 속삭였다.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소을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에휴…….”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는 녀석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자고 막 말을 하려는데, 한소을의 눈가가 울망울망했다. 상처받은 동물처럼 서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이 자식아, 너야말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다리에서 차를 세우는 게 자살행위라는 것도 모르냐! 이 녀석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방금 이 녀석 자신을 비롯하여 버스 내의 모든 승차자를 구해냈지만, 그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도리어 저를 구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기분이 몹시 언짢아진 승객 한 명만 추가되었을 뿐이다.
“어쨌든 강 다 지나기 전에 내리긴 했다. 됐냐?”
버스는 한강 유원지 앞의 정류장 앞에서 멈춰 섰다. 다들 유원지에 피크닉을 즐기기 위해 온 듯,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르르 버스에서 내렸다. 나와 한소을은 자연스럽게 그 물결을 따라 흘러내렸다. 물론 내리려고 예정했던 정류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긴장해버린 녀석을 억지로 계속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기왕 여기 온 김에 뭐라도 먹고 가자.”
“여긴… 어디지?”
“한강이야”
“한… 강?”
“왜. 여기가 삼도천이라도 되는 줄 알았냐?”
“…….”
“따라와.”
그러나 한소을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이 돗자리를 깔고 누운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즐겁게 먹을 것들을 나누는 사람들, 느긋하게 돗자리 위에 누워 따스한 봄의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 까르륵 웃으며 잔디밭을 뛰노는 아이들…….
그 밝고 평온한 정취가 한소을의 메마른 감수성에 어떤 파동을 일으켰는지는 모른다. 다만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며 알 수 없는 말을 조용히 읊조릴 뿐이었다.
“이곳은 내가 알던 곳과는 아주 다르다.”
“네가 알던 곳이 어디든 간에 누구 씨가 경고했던 위험한 곳은 절대 아니니까 걱정 내려놔.”
“여기서 더 있다 갈 수 있나?”
“응?”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어… 어, 그래.”
한소을을 만난 이래로, 녀석이 무언가에 욕심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걸 알면서도 얼결에 허락하고 말았다.
“뭐 좀 먹을래? 여기 매점도 있고 배달음식도 시킬 수 있을걸?”
녀석과 실랑이를 하며 지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간단한 요기를 하기로 했다…는 핑계고 실은 맛있는 게 먹고 싶었다. 나는 핫도그를, 한소을은 진한 계피 향이 나는 추로스를 손에 들었다. 이후 앉아서 먹을 만한 곳을 눈으로 훑었지만 벤치는 이미 만석이었다. 결국 휴대용 돗자리도 추가로 구매했다.
자리를 깔고 앉으니 한소을도 어색하게 자리 위로 올라와 그 위를 서성였다.
“뭐해? 앉아.”
“사양하겠다.”
“왜?”
“언제든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비해야-”
“그런 거 없거든? 빨리 앉아, 네 거동이 더 수상하다.”
녀석의 팔을 잡아 밑으로 끌어내리니, 한소을이 못 이긴 척 자리에 앉았다. 곧 둘 다 말도 없이 전투적으로 핫도그와 추로스를 먹는 시간이 찾아왔다. 특히 녀석이 든 추로스는, 음식 먹는 것만큼은 상남자인 한소을의 단 몇 입 만에 형체를 잃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이 녀석이 팍팍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조금 울컥해지는 게 있었다.
“맛있어?”
“맛있다.”
“그것도 처음 먹어보는 거야?”
“처음 먹어본다.”
“많이 먹어.”
“응.”
건조한 말 몇 마디가 오고 간 것뿐이지만, 그 건조한 대답에서 녀석이 얼마나 삭막한 인생을 살아왔는지가 느껴졌다. 맛있는 걸 먹는 즐거움도 인생의 낙인데…….
“궁금한 게 있는데 그럼 지금까지 뭘 먹고 지냈어?”
“아무것도 안 먹었다.”
“뭐? 그게 말이 돼? 그럼 먹지도 않으면서 뭘 하고 지냈는데?”
“…계속 잠들어 있었다.”
“지금껏 잠만 쭉 계속 잤단 말이야?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의식은 깨어있었으니 몸만 그 장승 안에 갇혀 있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허… 기가 막혔다.
고목이 썩어 부러지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 안에 갇혀 지냈던 걸까. 그 좁은 공간 속에서 언제 풀려날지 기약도 없는 시간을 버티면서.
녀석에 대한 짠한 마음이 배는 더 커진 것 같았다. 하, 이놈 자식이 진짜. 오민준도 내 돈 주고 먹을 걸 사다 바치지는 않았는데.
“추로스 하나 더 사다 줄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마침 매점이 근처에 있기에, 먹을거리를 하나 더 사다 줄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한소을이 내 손목을 덥석 붙잡아 저지했다.
“아니. 가지 마.”
“응? 왜? 더 먹고 싶잖아.”
도리도리. 나의 권유에도 한소을은 그저 고갤 저으며 거절할 뿐이었다. 왜 그러지? 잘 먹던데 그새 질렸나?
이런 나의 의문에 답하듯 녀석이 담담히 말했다.
“이대로 그냥 같이 있고 싶다.”
“응? 어어… 그래.”
한소을이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기에, 결국 돗자리 위에 다릴 뻗고 앉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는 아예 드러누웠다. 날은 좋고 배도 부르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누우니까 진짜 편하다. 너도 누워봐.”
내 권유에도 한소을은 좀처럼 누우려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나무토막답게 뻣뻣한 놈이 더 뻣뻣하게 굴며 버텼다. 대체 어디 있는 것인지도 모를 위험을 탓하며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정자로 앉은 한소을을 보며 쯧쯧 혀를 차다가 결국 포기하고 하늘로 눈을 돌렸다.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하늘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럼 난 네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겠네.”
“그래.”
“소을아”
“응?”
“네가 연예인이 되고 나면… 그래서 톱스타 자리까지 올라가고 나면……. 너 좋다고 따르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질 거야.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으음?”
한소을은 내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무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픽 웃으며 대수롭잖은 척 말했다.
“그때쯤 되면 나같이 하찮은 사람은 잊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렇지만 나 스스로 이런 말을 내뱉는 마음이 좋을 리가 없었다. 마음 한구석이 따끔따끔했다. 아직 오민준에게 데이고 남은 상처가 다 안 아물었나 보다.
“나는 네가 톱스타가 되기까지 최선을 다할 거거든.”
“…….”
“그러니까, 잊어버리지는 말아달라고. 그냥 널 위해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하고.”
“…….”
내 말에 한소을은 말없이 가만히 듣기만 했다. 느릿하게 감았다 뜨는 눈동자에 묘한 빛이 맴돌았다.
“짜식… 감동했구나?”
“아니. 화가 나는데.”
“뭐야?”
“내가 왜 널 잊어버리지?”
“왜긴… 다들 그렇게 해”
내가 이 녀석을 밀어주기로 결심한 시점부터 나의 존재는 묻힐 운명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을 밝혀주기 위한 조연, 엑스트라는 본래 잊히기 마련이다.
“나는 널 잊어버리지 않아.”
“그래.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넌 하찮지 않다. 아니, 오히려 특별하지.”
“빈말이라도 고맙다, 짜식아.”
“빈말이 아니다.”
한소을의 얼굴에 살짝 짜증이 비쳤다. 자꾸만 대수롭잖은 말처럼 흘려넘기는 내 태도가 화가 난 것 같았다. 몇 번 심호흡하듯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것이, 울컥 치민 감정을 다스리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후 한소을이 보인 행동은, 분노의 감정을 내비친 것과는 정반대였다.
“한소을...?”
녀석이 천천히 내 옆자리에 누웠다. 그러고는 똑바로 시선을 맞춰온다. 시리도록 검은 눈동자가 어째서인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뜨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눈에 비친 모든 것을 살라버릴 듯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눈빛이 정면으로 마주쳐왔다. 그제야 알았다. 녀석의 눈에 백 마디 말보다 깊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내 한소을이 입을 열었다.
“우선순위를 착각한 모양인데, 나한테 연예인이든 톱스타든 그런 건 관심 없다.”
“소을아...?”
“그건 단지 너와 동행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야.”
“아…….”
“너 자신을 수많은 다른 인간들보다 하찮은 것으로 폄하하지 마. 네 입에서 나온 말이라도 용서 못 해.”
한소을이 손을 들었다. 곧장 얼굴로 가까이 다가오기에 눈을 질끈 감았으나, 두려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오는 손길이 느껴질 뿐이었다.
“널 지켜내는 입장으로서 불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