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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신스틸러
작가 : 감귤
작품등록일 : 2020.9.23

과거 연습생, 현직 매니저, 조만간 백수 예정.
나 은서리, 연예기획사의 대표가 되어보겠습니다!

 
서울 구경
작성일 : 20-09-30 04:19     조회 : 382     추천 : 0     분량 : 5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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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한소을 너부터 캐스팅할 거야.”

 “캐스팅이 뭐지?”

 “사람을 뽑는 거야. 널 가장 먼저 뽑겠다고.”

 

 캐스팅 1순위는 당연히 한소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룹의 색채나 나아갈 방향 역시 녀석이 가진 이미지를 중점으로 하여 만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니 사람을 보는 기준점 역시 그가 될 터였다.

 

 “짜식, 넌 복 받은 줄 알아라. 이렇게 아무 실력도 검증되지 않았으면서 단번에 캐스팅되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그런가.”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아직까지 한소을에게서 노래나 춤 등 어떤 방면으로든 실력을 검증받지 못했다. 그나마 확실히 검증된 거라곤 큰 키와 잘생긴 이목구비 정도가 되려나.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소을이 데뷔를 하기만 하면, 분명 톱스타의 자리까지 엄청나게 빠를 속도로 치고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는 점이다. 녀석을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확실히 한소을은 남의 이목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기대되네요. 아이돌 한소을이라니.”

 

 곁에 선 홍수연이 기대에 들뜬 얼굴로 한소을을 보았다. 무덤덤하게 마주 보는 녀석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홍수연이 말을 이었다.

 

 “저는 한소을 씨를 배우로 키워낼 생각이었거든요.”

 “듣고 보니 확실히 배우 쪽이 더 어울릴 것도 같네요.”

 

 한소을은 그 자신만의 특유한 아우라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그 나이 또래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사연이 얼굴에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 녀석의 나이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액면가로 따져 볼 때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일 텐데. 그런데도 마치 세상 풍파를 다 겪어 본 듯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 녀석의 비인간적인 출신 성분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게 없는 건가.

 아니다. 그럼 그것 자체로 이상하단 말이지. 그 곁에 서 있는 홍수연에게서도 그와 비슷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니까. 이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이한 아우라를 고려한다면, 그렇다면 홍수연도 평범한 인간은 아닌…….

 

 “서리 씨. 서리 씨?”

 “네? 네!”

 “몇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셔서… 혹시 어디 아파요?”

 “아, 아니요!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해야 할 일이…….”

 

 서둘러 홍수연의 눈을 피하며 부산하게 자리를 정리했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그런 걸 따질 만한 정신이 없었다. 생각을 정리할 만한 곳으로 자리를 옮길 필요가 있었다. 아무 변명이나 주워섬기며 내가 급히 이 자리를 떠나야만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오, 오늘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일도 무척 많아요! 어쨌든 캐스팅을 하려면 사람을 많이 만나봐야 하니까….”

 “만날 사람 누구?”

 “어?”

 

 뜬금없이 치고 들어온 한소을의 질문에 미처 대답할 말을 준비하지 못하고 벙쪄버렸다. 누가 봐도 급조한 거짓말임이 들통나버린 대목이었다.

 그때 가늘어진 눈매로 나를 날카롭게 주시하던 녀석이, 이내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말했다.

 

 “그럼 나도 같이 간다.”

 

 녀석의 뜬금없는 동행 선언에 더 당혹스러운 심정이 되었다. 아니, 실은 나 아직 계획도 안 세운 상태거든? 갈 곳도 마땅하지 않은데 같이 가긴 어딜 같이 가?

 그러나 내 말 못 할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소을은 무심하게 방 밖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다행히 이런 그를 붙잡은 것은 홍수연이었다.

 

 “잠시만요. 두 분께 드릴 게 있어요.”

 

 홍수연이 응접실 한쪽에 있는 서랍장에서 조그만 박스 두 개를 가져왔다. 새 핸드폰이 담긴 박스였다.

 

 “가, 감사하긴 한데 이걸 왜 주시는 건지…”

 “지난번에 서리 씨 핸드폰이 비에 많이 젖은 것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였어요. 거기다 소을 씨도 이제는 핸드폰이 필요할 테니 두 분 다 쓰실 수 있게 준비했는데.. 어때요? 혹시 취향에 맞지 않으시면 다른 걸로 바꿀 수도 있어요.”

 “아니요! 정말 마음에 듭니다!”

 

 최신 핸드폰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한소을과 사이 좋게 나누어 가지고는 다시금 감사 인사를 전했다.

 

 “늘 너무 과분하게 대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제가 언젠가 꼭 성공해서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나의 다짐에 홍수연은 또다시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누가 그녀더러 차가운 미녀라 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을.

 세상 모든 사람이 이 그릇된 오해를 풀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다시 한번 다짐했다. 비록 홍수연은 수상한 사람이긴 하지만, 적어도 연예계 밑바닥을 전전하는 내게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니 받은 은혜만큼은 꼭 돌려주겠다고.

 

 “다녀오겠습니다.”

 “네. 잘 다녀오세요. 아, 그리고 아까 저희 식사하는 동안 하우스키퍼가 오늘 입을 옷을 각자의 숙소에 넣어두었을 겁니다. 숙소 옷장 안에 살펴보시면 될 거예요.”

 “난 필요 없어.”

 “딱히 안 입으셔도 상관은 없지만 잠옷 차림으로 서리 씨 일하는 곳에 동행하시는 것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소을 씨.”

 

 그 말에는 한소을도 딱히 할 말이 없었던 모양인지 반박하지 않았다. 또한 그렇게 단호하게 타박한 홍수연이지만, 막상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배웅할 때는 더없이 따뜻하게 인사하는 그녀였다.

 둘이 사이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덤덤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녀석을 보다가 기습적으로 물었다.

 

 “너희 둘이 사귀지?”

 “으음?”

 “실은 사귀는데 내 앞에서 티를 안 내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지?”

 “홍수연이랑 너랑 무슨 사이냐 이 말이야. 분위기만 봐서는 전부터 서로 알고 있는 사이 같은데.”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맞다.”

 “그렇지?!”

 

 녀석은 순순히 내 말을 인정해 왔다.

 

 “서로 가까운 사이야?”

 “글쎄. 생각하기 나름이다.”

 “오~ 역시 사귀는 거 맞는 것 같은데?”

 “아니. 그럴 만한 조건은 성립되지 않아.”

 

 응? 그게 무슨 소리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녀석에게 쉽게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려는데, 팅-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복도 끝의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이 복도를 나란히 걷는 동안 서로 어색해지는 것도 습관인가 보다. 못된 버릇이 되기 전에 파훼해야겠어.

 

 “옷. 잘 찾아 입을 수 있지?”

 “…….”

 

 이놈이 또다시 입을 꾹 다문다. 내키지 않는 듯이 미간까지 찌푸려져 있다. 괜히 녀석의 기분만 저조하게 만든 것 같아 무안해졌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일부러 더 명랑하게 말했다.

 

 “흠흠 아무튼, 조금 이따 보자.”

 

 객실 문을 열고 후다닥 도망치듯 안으로 들어왔다. 탁 맥이 풀리듯 현관문에 등을 기댔다가 스르르 주저앉았다. 뒤늦게 뜨끈뜨끈 열이 오른 뺨을 매만졌다. 내가 왜 그런 걸 물어봤을까. 정작 떠본 사람은 나였으면서, 아니라는 말에 왜 안도감이 들었을까.

 

 “후우… 바보같이 굴지 말자”

 

 겪어봤잖아. 오민준한테 데어봤잖아. 괜히 마음 주고 헌신했다가 헌신짝 되어봤으면서 왜 그래.

 양 뺨을 소리나게 짝짝 두들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방 한쪽에 놓인 옷장 문을 열었다.

 

 “와, 예쁘다…”

 

 옷장에는 캐주얼 정장 한 벌이 걸려 있었다. 활동하기 편하면서도 진중함을 놓치지 않는 깔끔한 옷이었다. 옷장 바닥에는 굽이 낮은 로퍼와 조그만 클러치백이 놓여 있었다. 오늘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을 고려해 단정하고 세련되면서도 내 발 상태까지 고려한 편한 차림이다. 홍수연의 센스와 배려가 다시 한번 빛나는 부분이었다.

 

 “하, 정말 감동이다.”

 

 난 언제쯤 그녀와 같이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신기하게도 옷이 맞춘 것처럼 사이즈가 딱 맞았다. 게다가 클러치백에 각종 소지품과 그녀가 준 새 핸드폰을 넣으니 공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괜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구두를 집어 들었다. 현관으로 향하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응...?”

 

 막상 입을 땐 몰랐는데, 막상 입고 나니 뭔가 낯이 익은 차림이었다. 어디서 본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 어제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홍소라.”

 

 그러고 보니 어제 홍소라의 입은 차림이 딱 이런 느낌이었는데. 편안하면서도 기품 있는 정장 차림에 클러치백, 낮은 단화.

 

 “에이. 아니겠지.”

 

 이런 패션이 지극히 희귀한 것도 아니고, 길거리에만 나가도 이런 차림의 사람은 심심찮게 볼 수 있는걸. 요 며칠 사이에 너무 예민해진 모양이다. 이런 사소한 일로 놀라는 걸 보면. 정말 홍수연 말대로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먹어야 하나.

 고갤 절레절레 저으며 신발을 꿰어 신었다.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꽤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듯, 벽에 기대어 선 한소을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너무 늦게 나왔지? 미안.”

 “…….”

 “응?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다. 가자.”

 

 물끄러미 날 응시하던 한소을이 앞서 나갔다. 원래부터 키가 껑충하게 큰 녀석이었지만, 정장 차림을 하고 있으니 그의 장신이 더 눈에 띄게 부각되었다. 한소을 역시 발목이 드러나는 슬랙스 바지를 입은 세미 정장 차림이었다. 캐주얼하긴 하지만 둘 다 나름대로 정장 차림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남달랐다.

 

 “이렇게 입으니까 우리 무슨 비밀 요원 같지 않냐? 맨 인 블랙 같기도 하고.”

 “맨 인 블랙?”

 “응. 정장 입은 비밀 요원 둘이서 외계인 때려잡는 영화야.”

 “그럼 우리 둘이 지금 은밀하게 누군가를 사냥하러 가는 건가.”

 “뭐? 사냥이라니 무슨-”

 “그래서 아까 누구를 만나러 가느냐는 내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한 거군. 비밀스러운 일이니까.”

 “야! 그런 거 아니거든? 이건 그냥 비유라고!”

 

 우리 둘의 옷차림과 영화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은 우릴 태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다다른 뒤에야 마무리되었다. 물론 설명이 끝난 뒤에도 한소을은 고갤 갸우뚱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아무래도 조만간 영화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1층 로비에 발을 내디뎠다.

 

 “아무튼 그런 영화가 있다는 거야. 지금 우리 모습이 꼭 그 외계인을 잡으러 가는 비밀 요원들 같다 이 말이고.”

 

 그제야 한소을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갤 끄덕였다. 오, 드디어...!

 

 “불순한 놈들을 잡아 죽이는 건 자신 있다.”

 “아니, 아니! 죽이면 안 돼. 죽이는 거 아니야. 우린 외계인을 잡는 게 아니고 인재를 영입하러 가는 거라고. 상대를 설득해서, 우리 편으로 포섭해야 하는 거야. 알아들었지?”

 “알아들었다.”

 

 의외로 순순히 납득한 녀석이 고갤 끄덕였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놈이긴 하나 쓸데없는 고집이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겨우 녀석을 설득하며 로비를 빠져나가는데, 이쪽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정확히는 이쪽이 아니라 한소을에게 향해 있었지만. 남의 이목을 쉽게 주목시키는 녀석의 재능은 이럴 때 안 좋았다. 치부가 될 수 있는 말까지 쓸데없이 집중해서 듣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말조심해야겠다.”

 

 밖에서는 한소을의 정체는 물론이고 아직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한소라와 홍수연의 존재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말아야겠다. 게다가 한소을은 겉은 멀쩡하다 못해 번지르르하면서도, 입만 열면 다른 의미의 존재감을 과시하기에 십상이니 더더욱 입조심을 시킬 필요가 있었다.

 나는 녀석의 손을 맞잡고는 거듭 당부의 말을 전했다.

 

 “소을아. 이제 여러 기획사를 둘러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나는 솔직히 심히 걱정된다. 그래서 한 가지 당부를 하자면, 아까 내가 비밀 요원 얘기를 했었지? 오늘 우리는 비밀 임무를 하러 가는 거야.”

 “비밀 임무?”

 “응. 나는 사람들을 영입하는 거고 소을이 넌… 네 정체를 들키지 않고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으며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거지.”

 “......”

 “어때? 할 만하겠어?”

 “쉽네. 평소대로만 하면 되겠어.”

 “어… 음. 그, 그래. 평소대로만 하면 되는데 가급적 말을 아끼는 게 좋겠다.”

 

 한소을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표정이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것이 왠지 불안했다. 이거 아무래도 과한 자신감을 잘못 불어넣어 준 것 같다는 후회가 뒤늦게 몰려왔다.

 

 “아, 아무튼 또 당부하자면. 절대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해코지하는 것도 금지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옆에서 잘 웃어주고 호응만 잘해주면 돼. 알았지?”

 “알았다.”

 “그럼 가자.”

 

 그렇게 녀석과의 첫 번째 서울 구경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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