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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신스틸러
작가 : 감귤
작품등록일 : 2020.9.23

과거 연습생, 현직 매니저, 조만간 백수 예정.
나 은서리, 연예기획사의 대표가 되어보겠습니다!

 
경고
작성일 : 20-09-30 04:17     조회 : 372     추천 : 0     분량 : 3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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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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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팅-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렸지만 아무도 내리는 이가 없었다. 정확히는 날 안아 든 한소을이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착… 했는데.”

 

 눈치 섞인 내 채근에 그제야 녀석은 걸음을 옮겼다.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여기서 따질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한소을은 왠지 모르게 화가 나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본의 아니게 지퍼를 채운 입을 삐죽댈 뿐이었다.

 그러나 복도를 지나 내 이름이 적힌 객실 문 앞까지 도착했을 땐 더이상 침묵할 수만은 없었다.

 

 “…이제 내려줘도 될 것 같은데”

 “…….”

 “한소을”

 “…….”

 “소을아”

 

 그의 이름을 재차 부르니 그제야 날 내려놓는 녀석이었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걸까 유추하다가 눈이 마주쳤다. 본래 눈동자가 유독 까만 녀석이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빛 한 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검게 가라앉은 눈이었다.

 

 “그래서”

 “응?”

 “누굴 만나고 왔지?”

 

 아니 그걸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단 말이야? 녀석의 지금껏 쌓아둔 분노의 근원이 겨우 그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야! 그걸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었냐?”

 “그래.”

 “마봉구 실장님 만났다! 됐냐? 이 자식, 향수 냄새 하나 가지고 되게 뒤끝 있네”

 “향수 냄새?”

 “그래. 향수. 몸에 뿌리는 거야.”

 “왜 그런 걸 몸에 뿌리고 다니지?”

 “참나, 그런 것까지 설명해 줘야 해? 당연히 좋은 냄새가 나게 하려고 뿌리는 거지”

 “좋지 않아.”

 “내가 말했잖아. 사람마다 각기 취향이라는 게 있어서 호불호가 있다고. 또 같은 향수를 뿌려도 사람마다 체취가 달라서 각기 다른-”

 “죽은 자의 냄새가 난다.”

 “죽은 자의 냄새가 나지. 응?”

 

 무심코 한소을의 말을 받다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얘가 방금 뭐라고 했지? 너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간 말마디를 천천히 떠올려 보았다. 녀석의 말을 상기하며 점차 표정이 굳어가는 내게 한소을이 말했다.

 

 “네가 누구를 만났는지 궁금해하는 건 그 때문이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문득 머릿속으로 오늘 누굴 만났었는지 기억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갔다. 마봉구 실장님과는 오늘 온종일 같이 있었고 그에게서 진한 향수 냄새가 났지만, 지금 한소을이 궁금해하는 향의 주인은 그가 아닌 것 같았다. 그 외에는 매장 직원들. 그들 역시 딱히 접촉한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만났던…….

 

 “…홍소라 회장님. 마지막에 홍 회장님이랑 마주 앉아서 대화했었어.”

 

 내 대답에 한소을이 고갤 끄덕였다.

 

 “처음 봤을 때는 그자가 정체를 감추고 있어 알아채지 못했는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

 “뭐… 뭐를.”

 “홍소라. 그자는 위험한 사람이다.”

 “뭐?”

 

 한소을의 시선이 내 뺨에 와 닿았다. 그다음엔 손. 그다음엔 코트 주머니로. 녀석의 눈길을 따라가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안에서 잡히는 것을 꺼내 보니 카드가 나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한소을의 시선이 닿았던 곳은 정확히 홍소라와 접촉했던 부분들이었다.

 

 “벗어”

 “뭐?”

 “그자가 준 물건들을 모두 버리란 말이다.”

 “뭐, 뭔 소리야? 멀쩡한 물건을 왜 버리래?”

 

 이게 얼마나 귀하고 비싼 건데! 명품의 가치에 대해 전혀 무지한 녀석의 헛소리에 기가 찼다.

 

 “그래. 네 말대로 홍 회장님이 위험한 사람이라고 한다 치자. 내가 받은 게 홍 회장님이 입고 쓰던 물건이면 버리라는 네 뜻을 충분히 이해해. 근데 이거 백화점에서 오늘 막 산 새것이거든?”

 “새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그자의 영향력이 네게 미치는 게 좋지 않다는 거다.”

 “그렇다고 오늘 받은 물건을 바로 버릴 순 없는 거잖아. 준 사람 성의가 있지! 또… 아깝기도 하고.”

 

 솔직히 바로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후자에 더 가까웠지만.

 

 “아무튼 지금 당장은 버리지 않을 거야.”

 

 내 고집에 한소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심기가 상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기에 녀석에게서 좋지 않은 반응이 나오리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선선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뭐?”

 “나는 네 선택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럴 거면서 왜 나한테 물건을 쓰라 마라 참견-”

 “네가 계약서에 사인하는 걸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그게 무슨 말이야.”

 “홍소라가 위험한 사람이라면 홍수연은 경계해야 할 사람이다. 아직은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지만 홍소라의 협조자로서 수족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만약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홍소라의 수작을 방관하고 있는 입장으로 보이는군.”

 “홍수연이...?”

 “그래.”

 “…….”

 “그렇지만 네가 홍수연을 신뢰하고 따르겠다면… 나는 네 선택을 거스를 수는 없어.”

 

 말문이 막혀 이번엔 내가 입을 다물었다. 분명 액면가로 보면 이 녀석 나이가 나보다 어릴진대, 어째서 어른 앞에 철없는 고집을 부리는 아이 같은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 한소을이 먼저 인사를 고했다.

 

 “쉬어. 내일부터는 바삐 움직여야 할 거다.”

 “어… 응.”

 

 손수 문을 열어 나를 객실 안으로 들여보낸 한소을이 몸을 돌이켰다. 녀석의 말 중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그의 등 뒤에 대고 물었다.

 

 “너. 계약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는 거지?”

 “아니.”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져놓은 것 치고는 의외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려던 본론은 뒤에 있었다.

 

 “네가 죽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 말을 끝으로 한소을은 내 방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객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뭐야…….”

 

 이게 뭐야. 사람 속 어수선하게 만들어놓고.

 현관 앞에 남겨진 나는 굳게 닫혀버린 문을 한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번 닫힌 문은 날이 밝기까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다음날.

 초췌해진 얼굴로 천장을 보았다. 끔벅끔벅, 감았다 뜨는 눈이 뻑뻑하게 아팠다.

 

 “한소을 이 자식…….”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막판에 폭탄을 던져준 누구 덕분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잠을 못 잤다.

 빈말이라도 '너 죽을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켕기는 게 사람 마음인데, 그걸 진지한 얼굴로… 이 자식이 장난도 어느 정도가 있지. 이놈의 자식을 그냥...!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으나 다시 주저앉았다.

 

 “아야야...!”

 

 구두로 혹사당한 발끝에서부터 무시무시한 통증이 타고 올라왔다. 비단 발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온몸이 마치 구타라도 당한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어제 온종일 걷고 움직인 몸은 근육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이고 아파라…….”

 

 그나마 방에 푹신한 슬리퍼가 있어 다행이었다. 녹슨 로봇처럼 삐걱대는 몸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갔다. 정작 잠은 한숨도 못 잔 주제에 퉁퉁 부은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찬물 세례로 붓기를 혼내주고는 손을 뻗어 벽에 걸린 수건을 집어 들었다. 대충 물기만 닦아내고 무심코 눈을 뜨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으악!”

 

 너무 놀란 나머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내 얼굴을 보고 놀라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허억, 헉…”

 

 숨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방금 본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째서…….”

 

 어째서, 거울을 본 순간 내가 아닌 홍소라의 모습이 비쳤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VVIP 라운지에서 보았던 비쩍 메말라버린 모습이. 늙고 지친 노인의 형상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잠시간 넋이 나가 있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잘못 본 거겠지. 어제 밤을 새운 탓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거다. 어제 들었던 몇 가지 석연치 않은 말들 때문에 신경이 쓰여 헛것이 보이는 거지. 하, 은서리. 이런 거에 겁먹기는.

 스스로 자조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울에 비친 한 쌍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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