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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신스틸러
작가 : 감귤
작품등록일 : 2020.9.23

과거 연습생, 현직 매니저, 조만간 백수 예정.
나 은서리, 연예기획사의 대표가 되어보겠습니다!

 
꽃놀이
작성일 : 20-09-30 04:08     조회 : 381     추천 : 0     분량 : 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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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우리 딸이 다 생각이 있었던 거군요.”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홍소라가 흐뭇한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그녀의 홍수연에 대한 열렬한 지지는 실로 대단했다. 그렇게 한동안 잠시간 생각에 잠겨 있던 홍소라는 고갤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서리 양이 테스트를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소라엔터테인먼트에서 신인 아이돌을 발굴해 육성하는 것은 확정이 되었으니, 저희 SR 그룹이 정식으로 스폰서가 되어 지원하는 걸로.”

 “예?!”

 “하지만 서리 양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자리이니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에 대해 일체 간섭하면 안 되겠지요.”

 

 이제야 겨우 고요해진 마음에 또다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그저 한소을을 홍수연에게 맡기고 난 단순히 매니저 역할만 할 거라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었다. 집에서 다 같이 출발할 때는 홍수연이 아는 맛집에 가서 맛있는 밥만 얻어먹을 거라 생각했었지. 그런데 지금, 회사를 물려받니 마니 하는 기로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을 등에 진 거대 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아니 아이돌 그룹 하나 만드는 게 자판기 커피 뽑듯이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닌데… 이렇게나 쉽게 투자 결정을 한다고? 부자들은 돈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라도 낭비하지 않으면 주체할 수가 없는 건가? 감히 평범한 소시민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에 새삼 충격을 받고 있을 무렵, 성격 급한 홍소라가 자신의 불같은 성미를 드러냈다.

 

 “그럼 아예 말이 나온 김에 이 자리에서 계약서를 쓰자고요. 피차 바쁜 사이에 또 시간 내려면 일정 조절해야 하고 번거롭잖아.”

 “계, 계약서요? 이 자리에서 바로 계약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

 “으응? 이른 게 어딨어. 괜찮은 투자처가 눈에 보이는데 빨리 계약해야지.”

 

 그녀가 계약할 의사를 드러내자 수행비서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서류 가방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그때 손을 들어 그를 저지한 이가 있었다. 홍수연이었다.

 

 “서리 씨 안색이 좋지 않네요. 아무래도 너무 몰아붙인 것 같으니 오늘 이 자리는 그저 식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

 “어머, 그랬니? 그래. 너무 당황스러웠겠구나”

 “그리고 서리 씨도 계약시에 개인적으로 작성하고픈 조건이 있을 수도 있으니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좋겠군요.”

 

 홍수연의 말이 맞았다. 안 그래도 불편한 식사 자리에 속이 편치 않았는데,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탄선언과 계약 제안에 급체라도 할 것만 같았다. 이런 때만큼은 홍수연이 정말로 고마웠다.

 

 “그럼 이만 내려갈까요? 꽃구경을 더 하면 좋겠지만 이곳 숲속은 해가 빨리 떨어지는 편이거든요.”

 

 그렇게 식사를 마무리하고 간단히 차를 마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시간은 정오가 훌쩍 지나있었다. 느긋하게 꽃구경을 할 여유는 없었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엔 아쉬운 감이 있었다.

 

 “한소을. 내가 사진 찍어줄게.”

 “사진?”

 “그래. 너 딱 거기 서봐.”

 

 한소을을 나무 아래에 세워두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그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풍성하게 핀 벚나무 아래 한소을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역시 찍는 보람이 있는 모델이다. 다만,

 

 “하아, 자세가 너무 경직됐다. 좀 더 자연스럽게 움직여 봐”

 

 차렷 자세로 서 있는 한소을은 누가 봐도 나 오늘 사진 처음 찍어봐요! 라고 외치는 듯했다. 아니 저 좋은 얼굴과 몸을 가지고 왜 잘 활용을 못하니…….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한숨을 푹 쉬자 한소을이 목각인형처럼 뻣뻣한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이렇게?”

 “아까보단 좀 낫네. 조금 아쉽긴 하다마는…….”

 “서리 씨도 찍어드릴까요?”

 

 그때 홍수연이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전문가용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촬영기사 노릇을 자처한 홍수연은 내 어깨를 슬쩍 밀어 한소을과 같이 사진 찍을 것을 권했다.

 

 “제가 아니라 수연 씨가 찍어야 잘 어울릴 텐데…”

 “저는 매년 와서 굳이 사진까지 찍을 필요는 없어요. 자, 둘이 나란히 서 보세요.”

 

 홍수연이 싱긋 웃으며 카메라를 우릴 향해 정조준했다. 능숙하게 카메라 기능을 매만져 손보는가 싶더니 찍겠단 손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서리 씨 포즈 정했어요?”

 

 그녀의 물음에 잠시간 포즈를 어떻게 취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내 곁에 선 한소을을 흘끔 보고는 그를 따라 경직된 차렷 자세를 취했다.

 

 “찍을게요. 하나, 둘, 셋!”

 

 나란히 차렷 자세를 취한 사진이 한 장 찍혔다. 포즈를 풀고 사진이 잘 찍혔는지 확인하기 위해 홍수연에게 막 다가가려 하는데, 그녀가 손을 들어 저지했다.

 

 “몇 장 더 찍을게요. 서리 씨, 그냥 자연스럽게 놀고 계시면 따로 신호 안 주고 계속 찍는 걸로.”

 “아, 알겠습니다.”

 

 그때부터 무작위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원한 그림은 대략 알 것 같았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나무들과 봄날의 안온함을 즐기는 오후의 한때를 연출하고 싶었겠지. 단지 모델들이 못 따라왔을 뿐. 나는 한소을 옆에 어색하게 서 있고 한소을은 카메라와 눈싸움을 하기라도 하듯이 뚫어지게 노려보는 기묘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대로 가면 목각인형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만 줄줄이 찍히겠군, 하고 위기의식을 느낄 무렵이었다.

 

 “한소을...?”

 

 지금까지 카메라만 노려보고 있던 한소을이 몸을 돌려 날 보는가 싶더니, 이윽고 손을 뻗었다. 커다란 손이 얼굴을 뒤덮음과 동시에 그늘이 졌다. 갑작스럽고도 저돌적인 행동에 놀라 흠칫하며 눈을 감았다. 곧 눈가에 간질간질한 느낌이 스치는가 싶더니 한소을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에 뭐가 묻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유 모를 낯간지러운 감정에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녀석의 눈치 없는 건조한 말이 분위기를 와장창 깨뜨렸다. 덕분에 내 심장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그래 고맙다, 짜식아”

 “응. 여기”

 

 녀석이 쥐고 있던 손을 펴 보였다. 그 안에 담긴 것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작은 꽃잎이었다. 그 커다란 손안에 있는 꽃잎이 너무나도 앙증맞아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풉! 귀엽네. 그거 나 줄 수 있어?”

 “아니. 내가 가질 거다.”

 “뭐야, 안 줄 거면서 왜 보여준 거야”

 “주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주먹을 쥐어 꽃잎을 감춘 한소을이 손을 거두었다. 고작 꽃잎 하나를 가지고 저리 치사하게 굴다니 이놈의 쪼잔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다시금 손을 펼쳐 작은 꽃잎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이 녀석이 처음 가진 소유물이 겨우 꽃잎 하나라는 사실에 조금 짠해졌다.

 그렇게 꽃잎을 바라보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한소을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 사진이란 거. 나도 찍을 수 있나?”

 “당연히 찍을 수 있지. 왜? 배워보려고?”

 “응. 찍고 싶은 게 생겼다.”

 

 답지 않게 조금 쭈뼛대며 허락을 구한 녀석은 꽃잎을 가슴 안주머니에 담아 갈무리했다. 어느새 촬영을 마친 홍수연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카메라를 똑바로 보지 않고 서로를 바라본 사진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나왔다. 특히 한소을의 표정이 경직된 얼굴로 카메라를 노려볼 때에 비해 훨씬 부드러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나온 베스트컷은 한소을이 내 얼굴을 감싸듯 손끝을 마주 댄 사진이었다. 우선 내 얼굴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데다, 마치 애틋한 것을 보듯 하는 한소을의 시선이 없던 사연도 끌어낼 것만 같았다.

 

 “확실히 소을 씨 단독으로 찍을 때보다 서리 씨랑 찍을 때 표정이 더 좋네요.”

 

 카메라 액정에 담긴 사진을 돌려본 홍수연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곁에서 함께 사진을 보던 홍소라가 하나를 콕 집어 말했다.

 

 “어머, 난 이게 맘에 든다.”

 

 그녀가 고른 것은 한소을과 내가 차렷 자세를 하고 찍은 사진이었다. 어째서 그게 맘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르신 취향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럼 이제 돌아갈까요?”

 

 왔던 길을 다시 돌아와 자갈밭이 깔린 주차장으로 왔다. 올 때 타고 왔던 차가 세워진 곳으로 이동하려 하는데, 홍소라가 날 붙잡아 세웠다.

 

 “서리 양은 나랑 같이 타고 갈까요?”

 “예?”

 

 그녀의 부름에 따라 우리가 타고 왔던 차 옆에 세워진 차량으로 이동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본 바 있는 크고 희소한 디자인의 차량이었다. 먼저 탄 홍소라를 따라 뒷좌석에 올랐다.

 

 “그럼 이따 회사에서 만나자꾸나, 수연아”

 “네, 어머니”

 

 홍수연과 한소을의 배웅을 받으며 먼저 출발했다. 운전기사를 제외하면 차 안에는 홍소라와 나, 둘만 나란히 앉은 채였다. 심장이 또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어떤 이에게는 이 시간이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천성이 새가슴인 나에게는 SR 그룹의 회장과 독대하며 가는 이 상황이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날 부른 걸까. 한소을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의 딸인 홍수연조차 물려두고서 오로지 나만 독대하려 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속에 들어있을 의도가 무엇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뒤따라오던 홍수연 쪽 차량마저 갈림길에서 갈라져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혼자가 된 것이다. 아니, 애초부터 혼자인 인생이었지만 잠시나마 한소을과 홍수연의 존재가 나도 모르게 의지가 되었나 보다.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걸 인지한 순간, 이제 심장은 언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빠르게 뛰어댔다. 손끝과 발이 차게 굳어 곱아들었다.

 

 “자……. 그럼 서리 양”

 “허억...! 네, 넵!”

 “내가 왜 서리 씨만 따로 불러서 같이 가자고 했는지 궁금할 거예요. 이 자리가 조금 불편하지요?”

 “괘, 괜찮습니다! 불편하지 않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마음 다 알아요. 사람들이 날 좀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더라고. 그래도 서리 양을 불편하고 어렵게 하려고 불러낸 건 아니니까 이해해줬으면 해요.”

 

 의미심장한 홍소라의 얼굴. 수상한 행선지……. 분명 조만간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경직된 분위기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이윽고 홍소라가 입을 열어 엄청난 일의 시작을 알렸다.

 

 “왜냐하면 지금부턴 우리끼리만 쇼핑하러 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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