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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신스틸러
작가 : 감귤
작품등록일 : 2020.9.23

과거 연습생, 현직 매니저, 조만간 백수 예정.
나 은서리, 연예기획사의 대표가 되어보겠습니다!

 
만찬
작성일 : 20-09-30 04:05     조회 : 383     추천 : 0     분량 : 6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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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을 씨!”

 

 똑똑똑, 문을 두드리며 한소을을 찾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날 여전히 뚫어져라 쳐다보는 녀석을 두고는 주춤주춤 문가로 다가갔다. 렌즈를 통해 문밖을 살피니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어제 나와 한소을을 집으로 데려다준 기사분이었다. 바로 문을 열고 인사를 하니 그가 멋쩍게 웃으며 뒷머릴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초인종을 눌러도 소리가 안 나서 문을 두드렸는데 혹시 불쾌하진 않으셨나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게 고장 난 지 좀 오래되어서…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한소을 씨를 소라엔터테인먼트로 모시러 왔습니다만…….”

 “아, 네. 이쪽으로-”

 

 막 등을 돌려 안내를 하려는데 시야가 가로막혔다. 그대로 얼굴을 박을 뻔한 것을 큼직한 두 손이 내 어깰 잡아 멈추었다. 어느새 뒤따라온 한소을이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아, 놀라라...! 언제 왔냐?”

 “방금. 지금 출발할 건가?”

 

 날 보며 짤막하게 대답한 녀석은 곧바로 문밖에 선 남자에게 사무적인 어조로 물었다. 자신보다 족히 스무 살은 넘게 많아 보이는 남자에게 반말을 서슴없이 내뱉다니. 건방진 녀석의 태도에 기함했으나 더 놀라운 것은 전혀 불쾌하거나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한소을에게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극진하고 정중하게 고갤 숙였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가져가실 짐이 있으면 제가 실어드리겠습니다.”

 “짐은 없다.”

 

 그 말과 함께 내 의견을 묻듯이 마주 보는 한소을이었다. 왜… 왜 보는 건데. 아까부터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너만 가는 거라니까? 홍수연이 나한테 관심을 보인 것도 너 때문이라고! 내가 가봤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이 녀석은 여기 있는 짐들을 다 가져갈 것이다.”

 “야!”

 “네, 알겠습니다. 예약이 잡히는 대로 포장이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잠깐만요! 저는 짐을 싸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이렇게 진행을 하시면...!”

 

 한소을은 그렇다 치고 왜 아저씨까지 말리지는 못할망정 부추기는 거냐고요!

 그러나 죽이 척척 맞는 두 사람 앞에서 내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리 없었다. 그렇게 날 데리고 가려는 두 사람과 옥신각신하며 버티고 서 있는 그때였다.

 

 “잠깐! 저는 안 가요! 어차피 가봤자 홍수연은 날 반기지 않을 거고…….”

 “제가 그랬던가요?”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홍수연이 현관으로 들어섰다. 가뜩이나 좁은 원룸에 홍수연까지 들어오니 현관이 터질 것 같았다.

 

 “수, 수연 씨? 여긴 어쩐 일로…”

 “당연히 두 분 모시러 왔죠. 그런데 꽤 오래 기다렸는데도 모두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올라와 봤어요. 올라오다가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힐 벗어버린 거 있죠.”

 

 그녀가 제 손에 들린 높은 하이힐을 가리키며 웃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 해본다는 듯한 해맑은 웃음이었다. 그렇겠지. 살면서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을 오르내려야 할 일을 겪어본 적이나 있을까. 저 힐만 봐도 계단이 뭐야, 평지에서도 차 없는 뚜벅이는 절대 신고 다닐 수 없는 모양새인데. 나는 멋쩍게 뒷머릴 긁적였다.

 

 “여기가 좀 오래된 건물이라서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그나저나 두 분을 모시다니 그게 무슨 소린지…”

 “한소을 씨를 영입할 때 소을 씨가 내건 조건이 하나 있었어요.”

 “조건이요?”

 “서리 씨도 전담 매니저로 무조건 함께 갈 것.”

 “네?!”

 “업계 최고 대우로 말이죠.”

 “...한소을이 그랬다고요?”

 “네. 소을 씨가 내건 조건이긴 하지만 저도 서리 씨에게 영입 제안했다는 사실 잊지 않으셨죠? 우리 회사 직원 복지 하나만큼은 섭섭지 않게 챙겨주는 거로 유명한데. 어때요? 같이 일해 보는 거?”

 

 그녀가 다시금 내게 손을 내밀어왔다. 그 손을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해야 할 시간이 왔다.

 사실 선택이랄 것도 없었다. 나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그냥 차라리 이쪽 업계 일은 완전히 때려치우고 새로운 직종으로 갈아타 일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전담 매니저, 물론 좋지만 그건 내가 바라왔던 길과는 궤가 달랐다. 하지만…….

 나는 곁에 서서 날 뚫어지게 쳐다보는 한소을에게로 고갤 돌렸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눈빛에서 왠지 녀석이 나를 의지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단지 자의식 과잉일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내가 이 녀석을 잘 돌봐준다면 민준 오빠, 아니 오민준 그 자식보다도 더 높은 위치까지 올려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번 해봤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할 수 있다. 해보자. 다만,

 

 “저도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저희가 들어주실 수 있는 거라면 바로 계약서에 반영하겠습니다. 어떤 조건이죠?”

 “한소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 주세요. 트레이닝 과정에 대한 비용도 빚으로 달아두지 마시고요.”

 “그렇게 하죠. 자세한 논의는 계약서를 작성할 때 더 추가하는 거로 하고, 일단은 이동을 하실까요? 저도 다음 일정이 있어서 시간이 더 지체되면 안 될 것 같거든요.”

 “앗, 네!”

 

 홍수연의 권유에 서둘러 집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힐을 벗은 차림 그대로 어설프게 계단을 내려가다가, 결국 보다 못한 한소을의 품에 안겨 1층까지 내려왔다. 늘씬하다 못해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몸매인 홍수연이 그리 무겁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사람 하나를 안아 든 채 무려 5층 계단을 내려온 녀석의 체력도 대단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누가 봐도 놀랄 정도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같이 서 있기만 해도 그림이 되는데 둘이 사귀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며 막 빌라를 빠져나올 무렵이었다. 홍수연이 아침 일찍부터 이뤄진 방문에 대해 사과하며 상냥한 질문을 했다.

 

 “두 분 다 식사는 하셨나요?”

 “네, 먹었어요.”

 “우유에 마른 나뭇조각 같은 것을 말아먹었다.”

 “시리얼이거든. 하하, 어쨌든 간단하게 먹었어요.”

 

 멋쩍음에 어색하게 웃었다. 한소을에게 잘해주라고 요구할 땐 언제고 정작 나는 녀석에게 우유에 시리얼이나 말아 먹인 게 생각나서 민망했다. 하지만 매일 새벽에 배달되어 오는 우유 외에는 먹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간 오민준 드라마 스케줄 때문에 오래도록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야 생각났다. 지방에 내려가기 전에 냉장고를 모두 비워놨다는 사실도. 당장 먹을 게 없으니 어딘가 처박아 두었던 시리얼을 꺼내 우유와 말아먹은 게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그간 문 앞에 쌓여 부패한 우유들을 처리해야 했던 건 물론이다.

 

 “그럼 점심부터 먹으러 갈까요?”

 

 아까 다음 일정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나의 의문이 담긴 눈길에도 홍수연은 사람 좋게 웃을 뿐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식당이 있다면서 그쪽으로 가자고 권유했다.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비건 식당이긴 한데 맛이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수연 씨, 어제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했었는데 죽 끓여주신 것 정말 감사했어요. 더군다나 채식하시면서 고기 죽 끓이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저야 서리 씨가 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홍수연이 또다시 웃었다. 사람은 간사한 존재인가 보다. 처음 봤을 땐 그렇게도 얄밉게 보이던 웃음이 조금은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얼빠진 얼굴로 멍하니 그녀를 보고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눈이 마주쳤다.

 

 “아 참. 이따 식사할 때 같이 동석하실 분이 계신데 괜찮죠?”

 “네? 네! 괜찮아요!”

 

 별생각 없이 대수롭잖게 긍정해버린 것이 실수였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최소한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었을 것을. 그렇게 나는 식당에서 누구와 조우하게 될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맛있는 밥을 먹게 될 생각에 마냥 들떴다.

 우릴 태운 차는 복잡한 도심지와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짙어지는 나무 그늘에 시야가 좁고 어두워졌다. 길은 의외로 매끈하게 잘 닦여있어 비포장길 특유의 덜컹거림은 피할 수 있었지만, 으슥한 분위기에 점점 얼굴 근육이 긴장으로 굳어지는 게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 곁에 앉은 한소을의 옷깃을 꽉 잡았다. 녀석은 내 손길에 사정없이 구겨지는 자신의 옷을 보았다가 손을 들어 내 손등 위를 덮었다. 창백해서 차가울 거란 인상과는 달리 한소을의 손은 따뜻했다.

 

 “손이 차다.”

 

 그 말과 함께 녀석의 손이 열을 내듯이 내 손을 꾹꾹 주물렀다. 느닷없이 손을 잡혀 주물러지는 손길에도 징그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아마도 이 녀석의 본질이 나무토막이라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옆에 앉은 한소을을 흘끔 보았다. 내 옆에 앉은 나무토막은 전혀 긴장한 기색 없이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그래. 이 녀석에게 울창한 숲이란 딱히 무서운 존재가 아니겠구나. 침착한 녀석의 태도에 나 역시 덩달아 안도감이 들어 점차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괜찮아. 손 놔도 돼”

 “…….”

 

 내 말에 한소을은 손을 조금 풀어 헐겁게 하는가 싶더니, 도리어 깍지를 껴왔다. 나도 굳이 맞잡은 손을 떨쳐내고 싶지는 않아서 더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손이 이전보다 뜨거운 건 아마도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일 터다. 한소을을 쳐다보기엔 괜히 민망해서 창밖만 머쓱하게 보고 있을 때였다.

 

 “거의 다 왔어요.”

 

 다행히 미묘한 공기의 흐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홍수연의 말과 함께 저 멀리 기와 담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잘 닦인 길 끝에는 다소 소박해 보이는 한옥 고택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달려온 이 길이, 오로지 저 한 집만을 위해 닦아놓았던 모양이다.

 

 “와…”

 

 마당 한쪽 자갈밭에 차를 세워두고 내리니 이미 차 한 대가 더 세워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차량보다 더 큼직한 체급을 자랑하는 차량은 서울 시내의 그 많은 도로에서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분명 희귀 한정판이나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외제 차겠거니 나름의 추측을 하며 고갤 끄덕였다.

 

 “아, 이미 오셨나 보네요.”

 

 홍수연이 반색하며 손님으로 추정되는 이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마당 안쪽에 있는 조그만 가옥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가 식당인가요?”

 “여기는 바깥채고요, 식당으로 쓰이는 안채는 이곳 바깥채를 지나고 중정을 한 번 더 거쳐야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구조가 독특하네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이 바깥채가 한 번 더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실제로 이곳 직원이라 할지라도 안채까지 출입하는 인원은 극히 제한되어 있어요.”

 “와……. 멋지네요. 마치 비행기 일등석 같네요.”

 

 내 말에 홍수연이 푸흐흐 웃었다. 차가운 얼굴에 답지 않은 소탈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모습을 보니 조금 낯설었다. 그녀는 연예계에서 차가운 미녀 이미지로 곧잘 통하곤 했기 때문에. 나 역시도 드라마 촬영 내내 홍수연을 줄곧 보아왔지만 웃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이렇게 서글서글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더욱더 놀라웠다.

 

 “서리 씨 정말 귀엽네요.”

 “예?”

 “아니, 사랑스럽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방금 그 말 정말 귀여웠어요.”

 “귀엽… 장난이죠?”

 “장난 아니에요. 진심인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싶어 얼떨떨한 얼굴로 서 있자니 홍수연이 날 잡아끌었다.

 

 “손님을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 서둘러요, 서리 씨.”

 “아 네, 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발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어느새 마당과 바깥채를 지나 중정에 들어섰다. 눈앞에 놓인 중정을 둘러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조경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막눈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풍경을 위해 섬세하게 조성해 두었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시기도 잘 맞추어 온 모양인지 사방천지의 나무들에서 꽃이 만발했다. 마치 집 전체가 꽃에 파묻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한 폭의 그림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남겨두었다. 이런 내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보고 있던 홍수연이 말했다.

 

 “예쁘죠?”

 “우와……. 정말 예쁘네요!”

 “저랑 저희 어머니는 이맘때마다 꽃나무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곳으로 와요.”

 

 담담한 말과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그 곁에서 나란히 걷는 한소을이 그림을 더욱 풍성히 만들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함께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이미 숱한 사연과 장대한 서사가 흐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 꼭 맞춘 듯이 닮은 두 사람을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과 동시에 서글픈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툇마루에 올라섰을 무렵이었다.

 

 “어머~ 이 아가씨가 수연이가 말했던 친구로구나. 수연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회…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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