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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신스틸러
작가 : 감귤
작품등록일 : 2020.9.23

과거 연습생, 현직 매니저, 조만간 백수 예정.
나 은서리, 연예기획사의 대표가 되어보겠습니다!

 
조만간 백수 예정
작성일 : 20-09-27 05:35     조회 : 373     추천 : 0     분량 : 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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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리 씨. 서리 씨?”

 “으음…”

 

 어깨를 잡고 흔드는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 제발 흔들지 마. 머리 아파!

 누가 머리를 잡고 쥐어짜는 듯이 아팠다가, 이내 머리에 대고 북을 치는 것처럼 둥둥 울려댔다. 눈을 뜨니 시야가 마구 흔들렸다. 아이고 어지러워라…….

 

 “정신이 들어요?”

 “…수연 씨?”

 “억지로 깨워서 미안해요. 근데 의사가 약을 꼭 먹여야 한다고 해서…….”

 

 홍수연이 처방된 약 봉투를 들어 보이며 무안하게 웃었다. 약 봉투라… 그게 뭐 어쨌다고? 뒷머릴 긁적이며 주섬주섬 일어났다. 머리가 지끈 아파서 이마를 짚었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나 왜 홍수연이랑 같이 있는 거지? 내 배우님은? 아니 그것도 그렇고 여긴 또 어디지?

 

 “어어, 여, 여기가 어디예요?”

 “저희 기획사 사옥이에요. 서리 씨 집 위치를 몰라서 일단 이쪽으로 데려왔어요. 괜찮죠?”

 “괜찮습… 헉! 그, 그럼 제가 수연 씨한테 신세 진 건가요?”

 “서리 씨 모습을 보니 응급실에 실려 갔던 것까지 말씀드리면 까무러치실 것 같네요.”

 “응급실이요?!”

 

 홍수연이 고갤 끄덕이며 쟁반에 담아온 죽 그릇을 내밀었다. 굵게 썬 소고기와 각종 채소를 갈아 넣은 영양죽이었다.

 

 “더 신세 지고 싶지 않으면 빨리 털고 일어나는 게 좋겠지요?”

 “아, 네, 네!”

 

 서둘러 죽 그릇을 받아들었다. 수저를 쥐고 호호 불어가며 입에 넣으니 고기가 어찌나 부드러운지, 씹기도 전에 녹아 없어지는 게 일품이었다. 육즙까지 나올 건 또 뭐람. 누가 죽 따위에 이렇게 비싼 소고기를… 감사합니다.

 비어있던 위장을 채워갈수록 몸 안이 뜨끈하게 데워지는 게 느껴졌다. 고기가 들어갔음에도 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숟가락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자니, 곁에서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맛있어요?”

 “네, 네! 정말 맛있네요!”

 “다행이에요.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한 건 처음이라……. 입에 맞을지 걱정됐어요.”

 

 그 말에 숟가락을 든 손이 멈추었다. 그녀의 말을 따져보자면 이 죽을 홍수연이 직접 만들었다는 건데. 엄청난 신세를 진 건 둘째 치고, 내가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녀는 연예계 안팎으로 유명한 채식주의자였다. 딱히 어떤 신념이 있어서는 아니고 체질적인 이유라고 했다. 그리고 고기를 오래도록 먹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고기 냄새만 맡아도 역해서 견디기 힘들어한다고 들었는데. 한평생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은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서 고기 요리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째서?

 

 “감사해요, 수연씨. 정말 감사해서… 더 궁금해요.”

 “뭐가 궁금하죠?”

 “왜 저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시는 거예요? 저한테 그러실 이유가 전혀 없는데, 잘해주시니까 너무나 감사한데, 한편으로는 또 무섭고…….”

 “그건-”

 

 홍수연이 막 입을 열었을 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하얀 김이 밖으로 풀풀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한소을이 목욕 타올만 허리에 두른 채 밖으로 성큼 나왔다. 위험한 차림은 둘째 치고 지금 남의 집, 그것도 외간 여자 집에서 샤워한 거야?

 

 “한소을 너 대체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냐니.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럼 지금 그 차림은 뭔데. 누구 좋으라는 서비스냐?”

 “서비스?”

 “여기 집 주인이 누군지나 알고 이런 민폐를 끼친 거야?”

 

 이 집 주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아느냐는 의미를 물어 담아 말한 건데, 아마도 한소을이 받아들인 뜻은 달랐던 모양이다. 그는 홍수연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집주인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아니 내 말은 그 뜻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있어.”

 “그, 그래? 알면 됐어. 아니, 알고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 되지!”

 “그럼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지?”

 “일단은 이렇게 남의 집, 그것도 혼자 사는 여자 집에서 함부로 몸을 씻으면 안 되지.”

 “집주인이 먼저 씻으라고 권유한 경우에도?”

 “응?”

 

 그, 그래?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는데……. 홍수연이 또 내가 잠들어있던 사이에 수작을 부린 모양이군. 그렇게 나는 또 한소을과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면서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수작을 좀 부리면 어때. 그런다고 해서 내가 쟤 여자친구도 아닌데. 나는 애써 상관없다는 식으로 나를 위로했지만 왠지 모르게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내게 홍수연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먼저 씻으라고 권했어요. 두 분 다 비를 맞았잖아요? 서리 씨도 씻는 게 좋긴 한데 몸 좀 추스를 때까지는 좀 기다려야 할 거예요. 일단 약부터 좀 드시고요.”

 

 그녀가 물과 함께 약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멋쩍어져서 뒷머릴 긁적이고는 약을 받아먹었다. 밥과 약을 먹으니 몸이 한결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씻고 나면 더 개운해질 것 같지만 여기서 더 큰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감사합니다, 수연 씨.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가시려고요?”

 “네. 안 그래도 이곳에서 폐를 너무 많이 끼쳤는데 더 눌러앉으면 염치가 없어서… 회사에도 나가봐야 하고요. 한소을, 옷 입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고갤 숙였다. 이런 내 모습을 홍수연은 가만히 보기만 했다. 그러다 이내 입을 열어 말을 건넸다.

 

 “서리 씨 아까 은혜 갚고 싶다고 했죠?”

 “네? 네. 제가 월급 타면 꼭...!”

 “혹시 우리 회사에서 같이 일해 볼 생각 없어요?”

 

 불쑥 내밀어진 명함에 흠칫했다가 쭈뼛쭈뼛 받아들었다. 명함에는 ‘소라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홍수연’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아, 그랬지. 이 사람, 연예계 데뷔와 함께 자기 스스로 소속사를 세운 대단한 사람이었지.

 갑작스러운 제안에 몸이 굳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애초에 연예기획사에서 먼저 내게 스카우트를 제안해온 것은 처음이었다. 늘 내가 먼저 문을 두드려야 했고 그나마도 기획사는 떨떠름하거나 마지못해 날 받아주곤 했다. 그런데 내게 먼저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라니.

 그렇지만……. 역시나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내 배우님. 그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무명이던 시절부터 톱스타가 된 지금까지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었다. 나는 그의 팬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키워낸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그 성취감 때문에, 점점 내게 소홀해지는 걸 알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역시 아직은 내 손에서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장은 옮기기 어렵겠다는 의사를 전하기 위해 입을 막 열었을 때였다.

 

 “수연 씨, 저는-”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

 우렁찬 벨 소리가 내 말을 끊고 대화 속에 끼어들었다. 대충 끊고 말을 이어갈 요량으로 흘끔 액정을 확인했다. 내 배우님이었다. 대충 끊기는 무슨,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미, 민준 오빠…….”

 “야! 너 지금 어디야! 내가 지금 몇 번이나 전화했는지 알아?!”

 “오빠, 그게 사실은-”

 “너 오늘 나 스케줄 있는 거 알아, 몰라? 근데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픽업하러 안 오냐? 아, 내가 직접 차 몰고 현장으로 가라는 뜻인가? 이야~ 은서리. 일 편하게 하네. 응?”

 “그, 그게 아니라 제가 몸이 좀 아파서 여태까지 못 일어났다가 방금 막 일어났거든요. 오빠 어디 계신지 알려주시면 거기로 바로 갈게요.”

 “됐고 너 앞으로 출근하지 마라. 응? 나오지 마. 회사에는 다른 매니저 보내라고 할 테니까.”

 “오, 오빠...! 제가 가서 다 말씀드릴게요! 아니, 지금 말씀드릴게요!”

 “네 사정 별로 안 궁금해. 끊을 거니까 연락하지 마. 알았어?”

 

 뚜-뚜-뚜--

 전화는 매정한 소리만을 남기고 끊어졌다. 폭풍같이 몰아친 고함소리가 지나고 나니 뒤늦게야 방 안이 지나칠 정도로 적막하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내게 집중된 두 사람의 시선까지도.

 

 “아…하하. 민준 오빠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가 봐요. 수, 수연 씨도 아시죠? 그런 날 있잖아요. 사람이 컨디션이 안 좋으면 기분도 다운되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흑...! 오빠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상황은 더욱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 안 돼, 울지 마! 애도 아니고 울어서 어쩌자는 건데!

 우는 모습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지 않을 거란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눈물을 뚝 그치려 노력했지만 한 번 북받친 감정이 쉬이 가라앉을 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참으면 참을수록 눈에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마냥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참지 못할 울음이라면 차라리 자리를 뜨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인사하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지금 나가자.

 

 “감사합니다, 수연 씨. 제가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가시려고요?”

 “네,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움직일 몸 상태 아닌 건 알고 있죠?”

 

 홍수연의 입이 살짝 삐뚜름해진 것 같았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약간의 기력을 되찾았을 뿐 여전히 아픈 상태였다. 열이 펄펄 끓었고 호흡이 가빴다. 그런데도 내가 이곳을 떠나려는 것은, 혼자서 울 만한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 손을 붙잡고 그녀는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서리 씨, 아프면 참지 말고 꼭 병원에 가요. 아니, 나한테 연락해요.”

 

 맞잡은 손에 명함이 쥐어졌다. 나는 그녀의 손에서 내 손으로 전달된 조그만 명함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흘끔 홍수연을 쳐다보았다. 오늘 참 여러 가지로 알게 된 면이지만 이 사람, 의외로 좋은 구석이 많은 인물이다. 아니, 내게 왜 이리도 잘해주는 걸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다. 이렇게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면 괜한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 속으로 욕하지나 말걸.

 나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홍수연의 집을 나섰다.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건물은 애초에 레지던스로 운영되던 것을 개조해 소라엔터테인먼트의 사옥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맨 건물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스위트실에 거주했다. 그 아래층들은 기획사 사무실이나 연습실 등이 있었는데, 조금 특이한 것은 레지던스로 운영되던 시절의 객실 한 층을 통으로 남겨두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홍수연의 바로 아래층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아무도 사용하는 이가 없어 공실로 남겨두었다고 했다. 아마도 연습생 숙소나 임직원 숙소 같은 게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할 따름이었다. 하긴 이런 서울 한복판의 금싸라기 땅 놔두고 굳이 다른 곳에 연습생 숙소를 마련할 필요는 없으니까.

 혼자 그럭저럭 납득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왔다. 1층 로비에 들어서기 무섭게 안내데스크에 앉아 수다를 떨던 직원들이 벌떡 일어나 깍듯이 인사했다. 아, 물론 나를 향한 인사는 아니다.

 

 “차 대기 시켜 두었습니다, 이사님.”

 

 이 융숭한 대접은 내 곁에서 걷고 있는, 무려 이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 직함을 달고 있는 홍수연으로 인한 것이었다. 미안하게도 그녀는 내가 집까지 타고 갈 차량까지 마련해 두었다.

 

 “조심해서 들어가요.”

 

 홍수연의 인사를 받으며 차 뒷좌석에 올랐다. 군말 없이 날 따라온 한소을은 잠시간 그녀를 바라보다 내 옆자리에 탔다. 그 뒤로도 서로의 시선이 꽤 오랜 시간 서로 얽혔다. 별로 눈치가 빠르지 않은 인간이라도 두 사람의 관계를 오해할 법한 진득한 시선이었다. 역시 좀 수상하단 말이야.

 그러나 녀석을 붙잡고 너 홍수연을 좋아하느냐고 묻기에는 몸도 정신도 너무나 피곤했다. 빨리 집에 가서 실컷 운 뒤에 한숨 자고 싶었다.

 

 “아이고, 머리야…….”

 

 이런 내 정신을 붙잡은 끊임없는 걱정들이 의식의 끈조차 놓을 수 없게 괴롭혀댔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나 정말로 잘린 건가, 아니 그간의 정도 있으니 다시 잘 말씀드려보면 마음 돌이킬지도 몰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결국 모든 고민의 끝은 내 곁에 있는 한소을에게로 향했다. 이 녀석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적어도 자기 앞가림할 때까지는.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녀석이 내 두 눈을 감겼다.

 

 “자.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왜일까. 그 말이 내 귀에 들린 순간 지금껏 내 신경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무언가가 탁,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르르 졸음이 밀려들었다.

 

 “한소을”

 “응?”

 “너 약손 맞나 보다.”

 

 녀석의 손은 내게 더없이 평안한 잠을 선사함으로써 약손임을 증명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그 손을 치워낼 수도 있었지만 애써 그리하진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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