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1307호로 가보자. 다이어트의 강박 속, 아예 종이를 치워버리고 닭발에 치킨. 그것도 모자라 인스턴트식품까지 몇 개 뜯어 먹은 유미에겐 난리가 났다. 맛나게 먹고 배부른 상태로 TV 좀 보다 잠든 게 전부인데. 그땐 아무렇지 않고 괜찮았는데…. 아침에 기분 좋게 눈을 뜨고 직행 한 곳은…. 화장실…. 그것도 약 30분 전의 상황이고. 지금은 5번째 화장실을 가는 중이다. 갈 때마다 ‘으아아!’ 소리를 지르고 나올 땐 ‘아하하하….’ 하고 나오니 1307호엔 이 두 개의 소리가 반복해 들려온다.
“배 아파. 위 쓰려 죽겠어.. 화장실을 가도 가도 왜 이렇게 아파..!!”
이젠 배를 잡고 소파에 풀썩- 앉는다. 힘이 없다. 배는 계속 아픈데 화장실까지 갈 힘이 없어 못 가겠다.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가면 속이 쓰려 다시 돌아오고 이렇게 앉아 있으면 또 배가 더 아프다. 계속 반복하다 보니 머리도 어질어질한 게 이젠 복합적으로 다 아프다.
“나 2개의 별이 보여. 둥둥 떠다녀.. 내 눈앞에.. 아! 배..!!!!!”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다시 화장실행. 물을 마시면 나아질까 싶어 먹었다 더 아파져 물도 못 먹고. 최악이다. 최악. 문제는 이 최악의 상황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어제 알아서 따뜻한 이불을 찾아 소파에 누웠던 유현은 오늘 푹 잘 생각이었다. 오전 일정도 없고 유미도 그럴 거로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 무슨 난리인지. 처음 몇 번 화장실 가는 소리가 들릴 땐 그러려니 했는데. 30분이나 저러고 있으니 잠을 잘 수가 없다.
도저히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정신 차리고 앉아 보니 또 가관이다. 방에 들어갔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부엌에 가려다. 다시 화장실. 거기다 반복되는 유미의 괴성까지.
“누나 대체 뭐해?”
“... ...하핳..”
“누나!”
“부르지 마...휴우..”
화장실에서 나오던 유미의 얼굴이 이젠 초췌하다. 더 소리 지를 힘도 없는지 유현의 말에 울컥해 소리를 질러도 약하디약하게 뿜어 나온다. 겨우 진정이 되어 힘 빠진 몸을 질질 끌고 물 한 잔과 소파에 앉는 유미. 힘이 쫙 빠진다. 몸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아니 아침부터 사람 잠도 못 자게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나도 몰라”
“누나 정신 좀 차려봐”
“왜 이러지. 어제 갑자기 너무 먹어서 그런가.. 급체 일 수도 있어. 한 번 딸까?”
정신 나가 보이는 자신의 얼굴 앞에 손을 휙휙 돌리던 유현의 손을 잡고 엄지손가락을 내민다. 이젠 힘이 없어 화장실도 더 못 가겠고. 아직 속도, 배도 아프고. 물이 빠져서인지 머리도 아까보다 더 아프고. 어서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언들 못하리. 옛날 방식이지만, 아플 땐 직빵이니까.
“체한 거 맞아? 그냥 배탈 난 거 아니야?”
“배탈? 설마 매운 거 먹었다고? 나 23살, 이틀에 한 번은 매운 닭발 먹은 여잔데? 매운 걸 얼마나 잘 먹는데 내가”
“누나 28살이잖아. 말을 할까 했었어. 누나 매운 거 요즘 잘 안 먹는 거 같았거든.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리가!!”
매운 거 하면 고유미인데. 항상 나의 곁을 지켜주고 위로해주던 이는 매운 닭발. 나의 기쁨을 함께 나누던 아이는 매운 떡볶이였는데…. 유형의 말을 믿고 싶지도 않고,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지금 자신의 상태는 그의 말의 증거가 된다.
나 몇 년 지났다고 매운 거랑 이별한 건가. 어제 먹을 때는 이런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확신은 안 가고 마음은 아프다.
“매운 게 내 사랑이라고..!!”
“약 있을 거야. 가만히 좀 있어봐. 정신 사납잖아!! 약.. 약..”
그 예전 23살의 고유미에겐 있을 수 없는 행위지만, 28살 고유미는 유현이 알기론 약을 쌓아놓고 먹는 편이었다. 약 한 달 전에도 약을 쌓아놓은 통을 봤었는데. 그때 약 먹는 걸 자신이 보는 걸 알고선 바로 숨겨버렸지만…. 약을 찾으러 부엌을 뒤지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다. 서랍장을 뒤져도 없고. 옆의 누나는 이젠 정신이 아예 나가버린 모양이고. 그냥 집에 가버릴까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겨우 참아낸다. 가족, 동생으로서 하는 마지막 인내심이자 배려다!
“못 찾겠다. 내가 가서 사 올게. 기다려”
“그래주면 상당히 고맙고. 빨리 갔다 와. 빨리! 서둘러!”
유현은 살짝 약 올리는 유미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 거실에 던져져 있던 유미의 지갑을 들고 나간다. 자신의 지갑도 있지만, 이건 일종의 반항이다. 열이 딱 받았을 때 눈앞에 제일 먼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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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507호의 상황. 시우가 그나마 중간중간 치워 깨끗한 거실과 그도 피곤해 채 치우지 못한 채 남아있는 부엌엔 어마어마한 설거지 양, 어제의 잔해로 꽉 찬 쓰레기봉투. 소주 6병…. 맥주 캔 8개. 병 2개가 빈 채로 뒹굴뒹굴하고 있다. 그리고 이 내용물들을 다 먹은 자들. 그 2명 중 한 명은 멀쩡하고 한 명은 숙취에 고생하며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다.
방에서 같이 자자는 시우의 말을 거절하고 굳이 거실에서 자겠다더니…. 혼자 맥주 2캔을 더 비우고 빈 캔과 함께 자다 깬 JUN이다. 숙취에 고생 중인. 1507호에서 나는 소리의 주인공.
“시우야.. 죽겠다.”
“맥주를 더 먹고 잔거야? TV보다 바로 잘 거라며?”
“사 온 거 다 먹자 싶어 먹었지, 숙취 음료 같은 거 없어?”
얼추 비슷하게 먹었다. 소주는 오히려 시우가 더 먹었을 거다. 끝장을 보는 성격에 남은 캔 맥주도 다 먹어버린 JUN이나 시우보다 더 먹었다곤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시우는 멀쩡하다. 마치 어제 술 한 잔도 안 한 사람의 얼굴과 상태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대체 술을 얼마나 먹어야 취하는지 궁금하다. JUN은 그 전에 또 자신이 먼저 술에 취해 이러고 있겠지만.
그러니 시우의 집에 숙취 음료, 숙취 제품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얼마 전, 집에 온 손님을 위해 한 번 사다 놓은 적은 있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면 누가 자주 와 술을 먹는 거도 아니고. 온다 해도 인물이 정해져 있으니. 사놓지 않는다. 거기다 제일 많이 오는 사람이 JUN인데, JUN도 술을 잘 먹는 편이니. 물론 오늘은 예외지만.
“과하게 달렸더니 속이 안 받아주네. 대단하다 너도. 어떻게 똑같이 먹어도 아무렇지가 않냐. 넌 인간이 아니야”
“숙취 약 없는데. 꿀물이라도 먹을래?”
“주면 감사합니다.”
부엌을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시우는 먼저 꿀물을 탄다. 사람부터 살려야하지 않겠나.
“꿀물 비율 좋네. 속이 좀 풀린다.”
“그러지 말고 옷 입어. 나가서 해장국이라도 먹고 오자”
“해장국?”
“응. 바로 앞에 있어. 워낙 골목이라 사람 없을 걸. 특히 지금 이 시간에는”
JUN의 걱정을 시우는 바로 눈치챈다. 시우는 그나마 괜찮다 해도 누가 봐도 숙취로 고생 중인 얼굴을 한 JUN이 그대로 나간다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란 거. 배우, 가수가 직업이란 사람이. 그걸 모를 리 없던 시우의 말에 마음이 놓인다.
어쩜 이건 시우보다 JUN에게 더 심한 강박일지도 모른다.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했으니까. 모든 시선에서 도망가지 못한 경험이 강하게 박혀 버린.
“그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