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눈물
여자는 있었지만 여성은 없던 암울했던 시절의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1. 정조관념이 뚜렷했던 시절
순결과 동정을 거론하던 시대에 순결의 의미는 대단히 컸다.
눈만 맞으면 모텔로 직행하고 계약동거라던가 일단 살아보고 결혼을 결정하겠다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으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나 다름없을 정도로 순결은 고결한 사랑의 징표였다. 그러나 목숨보다 소중한 순결을 간직하려는 그녀들을 희롱하고 농락하는 인면수심의 악마들이 우리 곁에 있었다.
2. 강간의 피해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트리기에 충분했다.
그날, 몹시 추운 겨울의 어느 날 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치부를 가감없이 털어놓았는지 나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허름한 순댓국집에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넋두리가 이어지던 어느 순간, 그녀는 눈빛이 달라지면서 수십 년 간 꽁꽁 숨겨두었던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치부를 꺼낼 때 난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보고야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뇌리에선 그날 그녀가 고백한 그 말들이 토시하나 틀리지 않게 또렷이 각인되어 한동안 내 기억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성폭행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사회적인 문제이지만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