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속 탐정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명탐정이 냉철한 판단력과 정확한 추리력으로 범인을 꿰뚫어내는 것을 볼 때 느껴지는, 쉽게 잊을 수 없는 짜릿함. 첫 작품이 나온 지 이미 200년 가까이 되어 가는 셜록 홈즈 시리즈가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주되는 것도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그 힘 때문이 아닐까. 이런 추리소설을 읽으며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멋진 탐정이 한 명쯤 있지 않았을까?’
<경성탐정사무소>의 주인공 정해경이 바로 그런, 우리의 탐정이다. 예리한 두뇌, 정의로운 성품, 진실을 알고자 하는 끈기, 게다가 소설의 남자 주인공답게 잘생긴 외모까지 갖춘 그에겐 어둡고 아픈 과거도 있다. 어느 부잣집의 종으로 살던 어린 시절, 함께 도망쳐 나왔던 누나와 불의의 사고로 헤어진 후 누나를 다시 찾겠다는 일념으로 탐정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해경의 곁에는 여자 주인공 박소화가 있다. 경성에서 이름난 부호 집의 하녀였던 소화는 어느 날 주인 댁 마님의 결혼반지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위기에 처하지만, 우연히 해경이 누명을 벗겨주게 되고 이후 그 집을 나와 해경의 탐정사무소 직원으로 취직하고, 그 뒤로 뛰어난 기억력과 의외의 강단을 한껏 발휘하며 해경의 든든한 동료가 된다.
해경과 소화 앞에는 여러 사건이 일어난다. 어떤 사건은 그리 어렵지 않게 풀려나가지만, 또 어떤 사건은 아주 심각한 내막이 드러나고, 과거의 원한이 고개를 들기도 하며, 새로운 조력자가 그들 곁에 함께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해경과 소화는 서로가 자신에게 점점 더 의미있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지만, 분명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해경은 도움을 주고, 소화는 그 신세를 갚으려는 것뿐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 하지만 여러 위기를 함께 마주하면서, 해경과 소화는 서로를 걱정하고, 자신이 상대를 보호해줄 수 있기를 바라고, 서로의 존재에 남몰래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이렇게만 말하면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을 계속 읽어나다가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조금 뻔하더라도 그게 잘못일까? 세상천지 자기 혼자뿐이라고 믿었던 그들이,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로 인해 기존의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로맨스로서 이 소설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이 소설의 묘미로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상상 이상의 시대적 고증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맨 뒤에 작가가 참고한 여러 자료들의 목록이 첨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제목들만 보아도 작가가 결코 이 시대를 허투루 다룬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세기 초의 경성. 일제의 만행에 고통받던 사람들, 일제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쌓던 자들, 총과 폭탄을 들고 일제에 맞서 싸운 열사들, 외국의 신문물과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 스스로 힘을 기르려던 이들, 오로지 현재의 삶과 즐거움만을 생각하며 살던 이들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뒤섞여 살았을 그곳. 치밀한 시대적 고증과 그 속에 적절히 섞여 있는 작가의 상상력은 당시의 경성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그려낸다. 덕분에 소설 속 경성은 머나먼 역사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부딪히며 살아가는, 어쩌면 정말 이런 사람들이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공간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고 외면당했던 정의가 제자리를 찾는 통쾌한 추리 소설. 외롭던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 온전하고 따뜻한 그들만의 세계를 이루어내는 로맨스 소설. 오래 전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딱딱하고 엄숙한 시선이 아닌 생생하고 실감나는 묘사로 그려낸 역사 소설. 세 가지 장르의 맛을 조화롭게 섞어낸 <경성탐정사무소>는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사람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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