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여행했니?”
“응.”
“얼마나?”
“수백, 수천 년을 늘 여행해 왔지. 헤아릴 수도 없는 긴 시간.” (파비안과 유리카의 대화)
위 대화에서 보여지듯, 세월의 돌은 지극한 세월에 대한 이야기가 주축이다.
주인공은 작은 마을에서 어머니와 잡화점을 운영하던 파비안이라는 소년이었다.
파비안이 잠시 마을을 벗어난 동안 마을에 괴물들이 습격하고, 괴물들에게 어머니를 잃은 파비안 앞에 아버지라는 자가 나타난다.
아버지는 자신이 나라의 기사단장임을 밝히며 가문을 위해 사계절의 목걸이를 완성시켜야함을 알려준다.
파비안은 목걸이를 완성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신비한 소녀 유리카를 만나게 된다.
소년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어 쉽게 몰입할 수 있으며, 독창적인 내용 덕분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판타지적인 세계관이 잘 구축되어 있고 긴장감 있는 전투신 역시 큰 재미 요소 중 하나였다.
“아니야, 너는 배경이 아니야. 내 세상에서 너는 중심이야.” (파비안)
“가지 않아. 내 의지를 떠나 유리벽 속에 갇혀 있게 된다 해도, 반드시 네 곁에 있어. 꼭 네 곁에 있겠어. 아무데도 가지 않아.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해도 손 끝 하나 닿지 못하게 된다 해도, 나는 네가 있는 그곳에 반드시 있어.” (유리카)
또한 파비안이 유리카에게 느끼는 감정, 그들의 감정선이 대사에 잘 표현돼서 좋았다.
문체의 세심함 덕분에 애틋함이 더 극대화되었던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돼. 나는 너를 믿어. 언젠가는 말할 거라고. 아니, 지금도 말하고 싶은 거라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파비안)
그 중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요소는 주인공인 파비안의 성장이었다.
길고 긴 여행 속에서 다양한 종족의 동료들을 만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파비안을 보는 것은, 마치 독자로서 같이 성장해 온 것만 같은 기분을 선사했다.
작품 초반부의 계산적이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밝고 행복하게 살던 파비안과 후반부의 파비안을 비교해보는 것은,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세월의 돌은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몰아치듯 비밀이 풀리고, 유리카와 사계절 목걸이, 아버지, 그 외의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세밀한 감정 묘사는 완결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들었다.
“나와 그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알았던 것일까. 결코 이 생애만은 아니었어.” (파비안)
“나는 너를 만났어. 긴 세월을 뛰어넘어 이곳까지 오게 된 행운.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태어났어.” (유리카)
중간 중간 파비안의 독백, 혹은 대사와 유리카의 대사가 맞물리는 부분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사랑하고 있어. 운명이 아닌, 영원 속에서.” (유리카)
“틀렸어요. 수천 년을 여행해 왔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않고 소년과 함께 영원히 있으니까요.” (파비안)
책의 결말은 파비안과 유리카의 이야기의 끝맺음이 아닌,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으며 그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매력적인 인물들과 개성이 드러나는 대사들이 인상 깊었고,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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